마이클 샌델 "서로 다른 윤리적 가치 인정해야 공정한 사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국제사회선 정의보다 타협 의존…'천암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화상기술로 '글로벌 교실' 구상
국제사회선 정의보다 타협 의존…'천암함'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
화상기술로 '글로벌 교실' 구상
"국제적으로 부각되는 '정의'의 문제와 특정 사회에서 제기되는 정의는 다르죠.민주주의 국가에선 안정된 정치제도가 있어 법치주의 안에서 정의가 가능하지만 국제관계에선 완벽하게 정의가 구현되기 어렵습니다. 불가피하게 타협에 의해 이뤄지죠.천안함 사건에 '정의'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깁니다. "
지난 5월 국내에서 출간된 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펴냄)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57)가 19일 한국을 찾았다. 이날 서울 신문로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난 샌델 교수는 '현대 국제사회에서도 정의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유엔안보리나 국제인권법은 모두 국가 간의 관계에 정의를 적용하려는 시도들인데 이는 사실 불안정하다"며 "이 때문에 실제로 국가 간 분쟁은 협상과 타협에 의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과 관련한 대북) 안보리 결의안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독립국가 사이의 타협으로 도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샌델 교수가 20여년간 하버드대에서 진행한 철학 수업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7000여명의 이 대학 학생 중 매년 1000명 이상을 한 강당으로 끌어모은 비결은 무엇일까. 책은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로 넘쳐난다. 미 정부의 구제금융은 정의로운 것이었나?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된 군인들은 왜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일까? 고장난 열차가 두 선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5명의 근로자 대신 1명만이 서 있는 선로를 선택하는 게 더 옳은 것인가?
샌델 교수는 한국에서 자신의 책이 많이 읽혔다는 데 대해 "무척 놀랐다"면서도 "'정의'에 대한 '굶주림(hunger)'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선 경제 논의가 정치를 지배해 왔죠.우리 모두 국민총생산(GDP)의 증가와 부를 원했고 분배의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광의의 정치가 경제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이 사람들은 점점 '공허함(emptiness)'을 느낀 것 같아요. 왜 '정치인과 정당들은 좋은 삶의 조건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가' 하는 정서죠.'공동의 선(善)''윤리''정신적인 가치'….이런 문제들에 대해 다 함께 다뤄보길 바랐던 것 아닐까요? 지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들의 이런 갈증을 잘 간파하고 활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에서조차 이런 논의는 아직 부족하지만요. "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하반기 국정 키워드로 '공정한 사회'와 '소통' 등을 강조한 것과 묘하게 겹쳐지는 발언이다. 샌델 교수는 시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전 세계의 모든 민주국가가 고민하는 문제라고 얘기했다.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자유주의적 시장 접근'과 정부가 동등한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는 각각의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시민도덕과 공동의 선을 추구하며 사회의 응집력을 키워가야 한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일각에선 '공동체주의적 접근법'이라고 말하는데 빈부의 격차가 너무 크거나 공동체가 분열되면 더 이상 공동의 목적과 시민의식을 공유할 수 없게 되거든요. "
샌델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책으로 펴내라는 주변의 권유을 받고 몇 년 동안이나 망설였다고 했다. 이유는 "학생들과 나 사이에서 이뤄진 다이내믹한 서스펜스,일종의 여행이 망쳐질까봐서"였다.
그는 "제 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벤담,칸트 등 과거 철학자들의 얘기가 아니다"며 "학생들과 독자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온라인 사이트(www.justiceharvard.org)에서 강의를 공개하고 앞으로 화상 컨퍼런스 기술 등을 활용해 '글로벌 교실'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그가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일까. "다원주의적인 사회에 살면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윤리적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권이 무엇이고 시민의 삶에서 윤리적인 가치는 무엇인지,서로 경쟁하는 가치들을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죠.이렇게 열린,솔직한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 단계입니다.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지난 5월 국내에서 출간된 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펴냄)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57)가 19일 한국을 찾았다. 이날 서울 신문로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만난 샌델 교수는 '현대 국제사회에서도 정의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유엔안보리나 국제인권법은 모두 국가 간의 관계에 정의를 적용하려는 시도들인데 이는 사실 불안정하다"며 "이 때문에 실제로 국가 간 분쟁은 협상과 타협에 의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과 관련한 대북) 안보리 결의안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독립국가 사이의 타협으로 도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샌델 교수가 20여년간 하버드대에서 진행한 철학 수업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7000여명의 이 대학 학생 중 매년 1000명 이상을 한 강당으로 끌어모은 비결은 무엇일까. 책은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로 넘쳐난다. 미 정부의 구제금융은 정의로운 것이었나?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된 군인들은 왜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일까? 고장난 열차가 두 선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5명의 근로자 대신 1명만이 서 있는 선로를 선택하는 게 더 옳은 것인가?
샌델 교수는 한국에서 자신의 책이 많이 읽혔다는 데 대해 "무척 놀랐다"면서도 "'정의'에 대한 '굶주림(hunger)'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자본주의 민주사회에선 경제 논의가 정치를 지배해 왔죠.우리 모두 국민총생산(GDP)의 증가와 부를 원했고 분배의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광의의 정치가 경제적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이 사람들은 점점 '공허함(emptiness)'을 느낀 것 같아요. 왜 '정치인과 정당들은 좋은 삶의 조건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가' 하는 정서죠.'공동의 선(善)''윤리''정신적인 가치'….이런 문제들에 대해 다 함께 다뤄보길 바랐던 것 아닐까요? 지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국민들의 이런 갈증을 잘 간파하고 활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에서조차 이런 논의는 아직 부족하지만요. "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하반기 국정 키워드로 '공정한 사회'와 '소통' 등을 강조한 것과 묘하게 겹쳐지는 발언이다. 샌델 교수는 시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전 세계의 모든 민주국가가 고민하는 문제라고 얘기했다.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자유주의적 시장 접근'과 정부가 동등한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자유주의적 평등주의'는 각각의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시민도덕과 공동의 선을 추구하며 사회의 응집력을 키워가야 한다'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일각에선 '공동체주의적 접근법'이라고 말하는데 빈부의 격차가 너무 크거나 공동체가 분열되면 더 이상 공동의 목적과 시민의식을 공유할 수 없게 되거든요. "
샌델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책으로 펴내라는 주변의 권유을 받고 몇 년 동안이나 망설였다고 했다. 이유는 "학생들과 나 사이에서 이뤄진 다이내믹한 서스펜스,일종의 여행이 망쳐질까봐서"였다.
그는 "제 강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벤담,칸트 등 과거 철학자들의 얘기가 아니다"며 "학생들과 독자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온라인 사이트(www.justiceharvard.org)에서 강의를 공개하고 앞으로 화상 컨퍼런스 기술 등을 활용해 '글로벌 교실'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그가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일까. "다원주의적인 사회에 살면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윤리적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권이 무엇이고 시민의 삶에서 윤리적인 가치는 무엇인지,서로 경쟁하는 가치들을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죠.이렇게 열린,솔직한 의견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첫 단계입니다.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