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일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에 대해 특검을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노무현재단이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한 데 이어 검찰이 차명계좌 유무 실체를 확인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지 불과 하루 만이다. 민주당은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검이 도입되면 검찰에 보관돼 있는 노 전 대통령 사건의 수사자료 전부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차명계좌 특검 쓰나미'로 뒤덮일 분위기다.

◆특검 도입 놓고 상반된 입장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19일 서울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문제는 역사적 진실에 관한 문제로 단순히 정쟁으로 하거나 인사청문회에서 고소고발로 해서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며 "바로 특검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검을 하면 수사기록을 전부 압수해서 2~3일 내에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가 밝혀진다"며 "만일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조 후보자는 즉각 파면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경원 최고위원도 특검 도입에 힘을 실었다. 당내 반대 의견도 적지 않지만 총리 ·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전체가 자칫 정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차라리 특검을 통해 진실 여부를 가리자는 '역공'인 셈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조 후보자가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주장한다면 이 사건은 검찰이 아닌 특검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아무 근거도 없이 특검 주장부터 하는 건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조 후보자도 '주간지를 보고 (노 전 대통령 차명계좌) 말을 했다'고 하는데, 사자의 명예를 추락시키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며 "청문회를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덫에도 걸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민주당 핵심 인사는 "조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게 흘러가니까 한나라당이 '물타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면서 "특검을 하게 되면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보유 여부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불가피하고 결국 '노무현 특검'이 될 텐데 이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盧 수사기록' 상자 다시 뚜껑 여나

검찰은 이날부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번 사건을 명예훼손 수사 담당인 형사1부(부장검사 신유철)에 배당했다.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허위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어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차명계좌를 일일이 다 들여다보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주임검사가 정해지면 수사범위가 명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부터 관련 수사기록을 넘겨받아 파헤칠 가능성도 있다.

이준혁/임도원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