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에 이란 제재 동참을 강력히 압박하는 가운데 그동안 '미국의 2중대'로도 불렸던 터키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터키는 지난 6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對)이란 제재안을 표결했을 때 반대표를 던졌다. 그보다 한 달 전엔 이란이 3.5% 농도의 농축 우라늄 1200㎏을 터키로 반출한 뒤 이를 20% 농도의 농축 우라늄 120㎏으로 돌려받는다는 내용의 '터키 · 브라질 · 이란 3자 중재안'도 이끌어냈다. 모두 미국을 바짝 긴장시킬 만한 사안들이었다.

터키의 이 같은 '독자노선'에 당황한 미국은 지난 16일 터키에 '무기수출 불가'를 경고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들이 경기침체에 허덕이는 사이 10%를 웃도는 경제성장률을 자랑하며 주요 20개국(G20)의 일원으로도 당당히 성장해나가는 게 요즘 터키의 모습이다. 그런 만큼 터키는 미국에 '말 잘 듣는 편한 우방'은 아니다.

이슬람 국가인 터키는 '국부(國父)' 케말 파샤가 1923년 공화국을 수립한 이후 서구의 개방적 생활스타일을 과감히 받아들였다. 외교정책에도 이 같은 성향이 반영돼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아랍권의 '공공의 적' 이스라엘과도 손을 잡았다. 또 EU 가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서방세계에 편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올 들어 터키는 탄탄한 경제성장을 무기로 '서방과 중동의 중재자' 역할을 본격적으로 자임하고 나섰다. 지난 1분기 터키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1.7%에 달해 G20 회원국 가운데 중국 다음으로 높았다.

터키 수출은 아랍지역을 대상으로 자동차와 TV,식료품 등의 판매가 늘면서 지난 6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3% 증가했다. 또 10년 전만 해도 GDP 대비 16%였던 재정적자는 내년에 3% 미만으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며,한때 72%로 치솟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대로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터키의 올해 연간 경제성장률이 6.3%로 고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터키는 '화해 외교'를 주창하며 과거 적대관계에 있던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 5월엔 에게해를 사이에 둔 '숙명의 원수'였던 그리스와 이민자 송환 등 21개 협정을 체결하면서 경제 · 문화협력을 다짐했다. 아울러 시리아와 레바논,요르단 등 아랍 3개국과 자유무역지대 창설도 추진하기로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지난 6월 아랍-터키 포럼에서 "터키는 아랍 없이 살 수 없다. 아랍은 터키의 두 눈"이라고 말해 아랍 지도자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터키는 특히 이란과 자원외교 관계 강화를 모색 중이다. 타네르 이을드즈 터키 에너지 · 천연자원 장관은 지난 11일 "터키 민간기업들이 이란에 석유제품 수출을 원한다면 (미 정부의 이란 제재와 상관없이) 막지 않을 것"이라며 "이란과 공동 추진 중인 발전소 및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도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터키의 역동적인 경제성장과 정치안정에 대한 자신감은 서방세계의 예상을 뛰어넘는다"며 "터키에 변화된 지위에 걸맞은 새로운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