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계속되면서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올 여름 들어서만 벌써 아홉 번째다. 전력예비율(예비전력/최대수요)도 위험수위인 6%대로 떨어져 전력 수급에 비상등이 켜졌다. 태풍과 집중 호우로 주춤했던 더위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사무실과 가정에서 에어컨을 가동하는 시간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늦더위는 다음 달 초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게 기상청의 관측이어서 전력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휴가철이 거의 끝나면서 공장도 풀가동되고 있다. 만약 발전소 하나라도 가동이 중단되면 전력 수급에 큰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전력 수급불균형 심각

최근 전력수요가 늘어난 것은 경기회복도 한 원인이다. 전체 수요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수요가 빠른 경기회복 덕분에 작년 11월부터 매월 10~20%의 증가세(전년 동월 대비)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여름철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냉방수요까지 가세해 전력수요 급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올해 냉방 전력수요는 1502만㎾로 작년보다 17.5%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력수요는 지난달 1일 6327.4만㎾를 기록하며 이전 최고치였던 6321.2만㎾를 넘어섰고 이후 2,5,6,19,20,22일에도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웠다. 이달 들어서도 19,20일 연속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식경제부는 올 여름 최대 수요는 7070만㎾에 달해 작년보다 11.8%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대 전력수요가 7000만㎾를 넘는 것은 기록적인 일이다. 20일 6988만㎾까지 올라간 것을 감안하면 7000만㎾ 돌파는 시간문제다.

반면 올 여름 최대 전력공급은 7530만㎾로 지난해에 비해 3.7% 늘어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 수급에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부터 전력예비율은 주중에는 7~17%까지 떨어졌다가 전력 사용이 다소 줄어드는 주말에 20%선을 회복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전력예비율은 휴가가 피크인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는 안정세를 보이다가 8월 둘째주 정도부터 떨어지지만 이후 폭염이 누그러지면 다시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올해는 폭염이 계속 기승을 부리면서 9월까지 전력 대란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지경부의 설명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매일매일 전력수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올 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하는 날의 예비전력은 460만㎾로 전력예비율이 6.5%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발전 설비 늘려야

전력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름철 수요에 비해 발전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환경단체와 발전소 건립 예정지 주민들의 반대로 신규 발전소를 많이 건립하지 못한 것이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올 상반기 새로 준공된 발전소는 군산과 송도의 복합화력발전소 단 두 곳뿐이다. 하반기 준공 예정인 영월 복합화력발전소와 판교 열병합발전소의 시운전을 앞당겼지만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물론 여름철 수요만 보고 발전소를 늘릴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계절에는 전력이 남아도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은 저장하기가 쉽지 않아 생산하는 즉시 소비가 이뤄진다. 전력이 남아돈다고 비축해 두었다가 부족한 여름철에 쓸 수 없다. 또 건립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는 천연가스(LNG) 화력발전소를 세우는 데도 6000억여원이 들어가는 등 비용도 큰 부담이다. 한 발전업체 관계자는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 데는 보통 7~10년이 걸린다"며 "그렇기 때문에 신중한 수요 예측을 거쳐 건립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정전 사태가 벌어지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만약 과부하가 걸려 용량이 큰 발전기 한두 개가 동시에 고장이 나면 주변 발전기나 송전기들이 연쇄적으로 정지된다. 발전소는 서로 송전 수요를 보충해 주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전체 전력 수요자의 3분의 1이 정전을 겪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수요 관리나 공급 차단 등의 대비책을 마련해놓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결국 수급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문영환 전기연구원 스마트그리드연구센터장은 "가장 큰 문제는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 여름철 기온이 지속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라며 "여름철 전력예비율이 6% 이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발전 설비를 늘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욱진/서기열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