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행이 기업을 힘으로 굴복시켜 군림하려 하고 있습니다. "(현대그룹 측 변호사)

"현대에는 악감정이 없습니다. "(외환은행 측 변호사)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여부를 둘러싸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현대그룹과 외환은행 등 채권은행 측이 법정에서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50부(부장판사 최성준)는 20일 현대그룹이 외환은행과 산업은행,신한은행,농협협동조합중앙회 등 4개 주요 채권은행을 상대로 낸 가처분사건 심리를 열었다. 포문은 현대에서 열었다. 현대 측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요지를 밝히면서 "이번 일은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기업과,기업을 힘으로 굴복시켜 그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한 금융자본의 싸움"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측은 "외환은행의 행위는 기업의 자유를 정한 헌법 119조 위반이며 형법상 강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분쟁은 현대상선의 경영 상태에 대한 현대그룹과 외환은행 간의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며 "해운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외환은행의 '어리석은'견해 때문에 현대그룹이 큰 피해를 봤다"고 덧붙였다.

이에 맞서 외환은행 측은 "객관적인 지표로 구성돼 있는 기업 재무구조 평가에 의해 현대가 재무구조 약정 대상이 됐을 뿐"이라며 "40년간 주채권은행으로 거래한 현대에 아무런 악감정이 없다"고 말했다.

또 "은행 입장에선 싫든 좋든 금융당국의 규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재판장이 "채권은행 협의회를 구성해 공동행위를 한 감독규정의 근거가 있느냐"고 지적하자 다소 머뭇거리며 "명백한 규정은 없지만 '주채권은행'만을 제재의 주체로 규정한 것은 입법자의 실수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재판장이 재차 반문하자 "금융감독기관은 은행이 공동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고 답변했다.

한편 법원은 양측의 화해를 권하기도 했지만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은 팽팽한 견해 차이만 확인했을 뿐 현대는 "외환은행과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고 다시 언급했다.

현대그룹은 주 채권은행의 2009년 재무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거부했다. 외환은행 등 13개 채권은행들은 이에 대한 제재 조치로 신규여신 중단에 이어 7월29일 만기도래한 여신 회수에 들어갔다. 현대그룹은 외환은행 등 채권은행이 취한 금융제재가 부당하다며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