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가로 40m,세로 2.5m짜리 대형 설치회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2m짜리 작품 20개를 만들어 붙이는 거죠.벌써 4년이 흘렀네요. 내년 2월에 완성합니다. 이런 대형작품은 건물의 설계도를 미리 받아서 작업합니다. 건물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까지 고려한 '설치적 회화'죠.건축가와 동등한 입장에서 건축의 시작부터 함께하는 작업인데 회화가 건물의 부속품이 아니라 건축과 동등한 무게감을 가지도록 하는 겁니다. 합리적인 건축가의 설계에 예술가의 비합리적 상상을 더하는 셈이죠."

초대형 설치회화 작업으로 국내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재미 화가 이상남씨(57).그는 LIG손해보험 사천연수원의 건물 사이를 잇는 유리 통로 전체를 벽화로 꾸미느라 여념이 없다. 그의 작품 주제는 '풍경의 알고리듬'.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칠하고 사포로 갈아내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한 뒤 그 위에 기하학적 선과 원의 이미지를 그려넣는 작업이다. 작품이 설치될 공간에는 자외선 차단 유리를 쓰고 별도의 에어컨 시설도 갖춘다.

그의 초대형 벽화는 경기도미술관 벽에도 설치돼 있다. 규모도 더 크다. 가로 46m,세로 5.5m에 이른다. 66개의 작품을 퍼즐 맞추듯 이어 붙여 완성했다. '1㎜의 전쟁'이라고 표현할 만큼 섬세한 작업이었는데 우리 기술이 그의 기획 의도를 잘 맞춰줘 새삼 한국의 기술력에 놀랐다고 했다.

"이 시대에 한국에서 태어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뉴욕으로 건너간 지 30년이 됐는데,제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 제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좋은 컨템퍼러리 아트 컬렉션을 가지고 있고 세계 미술인들이 꼭 들르는 순례지이기도 한 경기도미술관에 영구적인 작품을 걸게 돼 무척 기뻤죠.중등교과서에 제 작품이 실리면서 중학생들이 미술관에서 실제로 작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커피빈과 PKM갤러리가 후원해줬습니다. "

그의 작품은 규모뿐만 아니라 수작업 과정에서도 유난히 고통스러운 단계를 거친다. 캔버스나 나무판,철판 위에 물감을 칠하고 계속 갈아낸다. 공간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축적된 생각과 아이디어로 기묘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요즘은 아이디어를 컴퓨터로 풀어내고 그 후에 육체적인 노역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는 치열한 장인정신을 고집한다.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제도용구 '오구'를 독일에 주문하거나 고물상에서 구해서 그려요. 작품을 평면으로 만드는 데만 몇 개월씩 걸립니다. 손이 많이 갈수록 작품에서 인간적인 냄새가 나요. 그림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 숨겨진 노역을 순간적인 감으로 느끼더라고요. 뉴욕타임스나 미술전문지들이 제 작품의 이런 부분을 '매혹'이라고 표현하던데 그것 또한 하나의 메시지죠.보는 사람의 눈이 작품에 2초라도 더 머물러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전 이걸 제 작품이 관람객의 '눈동자에 상처를 냈다'고 표현하는데 작가에게는 몇 초 더 눈길을 사로잡느냐 하는 게 관건입니다. "

그는 왜 이렇게 고된 노동을 중시할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무대 위에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고 여자 무용수가 의자를 돕니다. 한 바퀴,두 바퀴….그 단계에선 형식으로 보기도 하고 내용으로 보기도 해요. 그러나 도는 횟수가 40회,50회 이상 넘어가면 관객도 함께 헉헉댑니다. 모두가 그 노동에 동참하게 되죠.이처럼 작품에 녹아 있는 노동은 관객이 본능적으로 감지합니다. 한 번의 붓칠과 100번의 붓칠은 다르죠.전 이를 작품을 만나는 긴 여정(long journey)이라고 말합니다. "

그가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게 된 계기가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 그는 사진과 실험예술로 국내에서 꽤나 알려진 작가였다. 1981년 뉴욕에 도착해보니 한창 독일 신표현주의가 유행하고 있었다. 지금은 뉴욕과 서울의 미술 경향이 거의 동시에 흘러가지만 당시에는 달랐다. 그래서 독일 신표현주의와 같이 손으로 그려진,손맛이 느껴지는 작품이 유행하던 뉴욕에서 그의 기계적이고 미니멀한 작품은 주목받지 못했다.

"물감으로 '그리는 것'은 당시 저에겐 이미 폐기된 작업 방식이었지만 다시 붓을 잡았죠.새로운 작업 방식을 찾기 위해 무작정 캔버스 위에 무엇을 계속 칠하게 됐고, '공간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작업의 아이디어가 탁 하고 나왔어요. "

그는 요즘 한창 작품을 쏟아내는 중이다. 아니,쏟아져 나오는 작품 때문에 그의 몸이 못 따라갈 정도다. 그 많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나.

"영감이 떠오르면 작은 메모지에 깨알같이 쓰기도 하고,일기장이나 수첩에 적기도 합니다. 작업실에는 메모들과 일기장,수첩이 마구 쌓여 있죠.이게 기초가 됩니다. 이런 기초가 무척 중요합니다. 기초가 잘 돼 있어야 죽을 때까지 쏟아낼 수 있죠.회화는 인문학과 같아서 기초가 정말 중요해요. 요즘 김수영 시인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그만큼 인문학적 기초가 부족하다는 말이죠.기초가 없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문학이고 미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신호가 바뀌어버린 횡단보도를 느릿느릿 걸어가는 할머니같이 누가 뭐라고 하든 제 길을 제 속도대로 가는 게 예술이지요. "

서울 청담동 PKM갤러리 전시장에 걸린 그의 그림에서도 인문학적 기초와 설치적 회화의 예술론이 확인된다. 수많은 기호들로 이뤄진 그림은 언뜻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진입금지나 일단멈춤 신호판 앞에 서 있는 듯도 하고,헬리콥터가 날아가는 듯하기도 하다.

이런 기하학적 형태나 기호들을 보고 평론가들은 그를 칸딘스키보다 뒤샹에 가깝다고 말한다. 서구에서 폐기된 기하학적 추상을 그가 더욱 '기기묘묘하게' 추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상을 추상화하는 작업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그는 붓과 붓질의 정체성을 오히려 도구(tool)로 사용한다고 했다. 폐기되는 추상화적 기법을 가져다가 추상화하는 것,말이 안 되는 것을 가져다가 다시 말이 되게 하는 것.그는 수백 개의 '이상남 고유의 기호들'을 만들어놓고 작업할 때마다 이를 조합한다. 디자인과 미술,건축과 회화,디지털과 아날로그,모던과 포스트모던의 사잇길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과의 소통을 통한 상식의 세계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운영하던 철물점에서 온갖 물건을 가지고 놀았던 그는 그런 기초체험이 축적돼 작품의 깊이를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내년에 서울과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인 그에게는 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노동이다. 물론 몇 년씩 죽을 둥 살 둥 준비한 작품으로 세상과 만나고,빵과 맞바꾸고,또다시 고통스러운 작업으로 돌아가는 예술가적 삶 자체가 더 그렇긴 하다. 가끔씩 극찬 대신 혹평을 하는 사람을 만나도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작가는 칭찬을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작품에 대한 비판도 칭찬의 일부니까 다 고맙죠."

kdh@hankyung.com


"매일 안 그리면 그림이 죽어요…그래서 더 행복하죠"
'워커홀릭' 이상남의 성직자적 예술론

인터뷰 말미에 그는 존 케이지 얘기를 꺼냈다.

"어떤 사람이 존 케이지에게 찾아와서 자신의 시험용 음반을 한 번 들어달라고 했는데 무안할 정도로 딱 잘라 거절했답니다. 자기가 작업할 시간이 부족해서 들어줄 수 없다면서요. 케이지의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시간이 갈수록 실감나요. 피아니스트가 매일 연습하며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실력을 닦듯이 화가도 매일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그림이 죽습니다. 늘 그림 생각만 해야 해요. "

그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꿈을 꿔야 자동기술적으로 그림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각각의 작품들은 이런 시간과 노동이 축적된 산물이고,10년을 꾸준히 작업해서 그 10년을 한 화폭에 보여줄 수 있는 게 회화"라고 말했다. 작업실밖에 모르고 '기초'를 닦는 데 30년을 쏟아부은 그가 "어쩌면 예술가와 성직자의 삶은 같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가든 성직자든 바람 속에서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치열함에 있다.

"저에겐 삶 자체가 늘 작업을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입니다. 어떤 예술이든 24시간 생각해야 해요. 물론 이런 삶에는 대가가 따르죠.놀 줄도 모르고 재미없는 사람….인간 존재로서 일상을 생각하면 불행하다고 볼 수도 있지요. 이게 제 취약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전 다른 것보다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재미있습니다. 그만큼 모든 에너지를 작품에 쏟죠.작품을 하면서 느끼는 희열이 제 자신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작가로서 하루하루 행복하면 인생 전체가 행복한 것 아닐까요?"

그의 작업실에 쌓여 있는 드로잉 더미가 이를 증명한다. 이 드로잉들을 다시 주무르려면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는 잠자고 먹는 시간 외에는 오롯이 작품에만 빠져든다. 시험용 음반을 한 번만 들어봐달라는 간청을 뿌리치고 자신에게 몰두한 작곡가 존 케이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