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권경쟁의 핵심 고리인 지도체제를 둘러싸고 손학규-정세균 연합과 정동영 상임고문의 대립구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손 고문과 정 전 대표는 현행처럼 대표와 최고위원을 따로 뽑는 대표 중심의 당 운영을 고수하는 데 반해 정 고문 측은 동시 선거를 통한 최고위원 중심의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나섰다.

정 고문은 20일 "국민들은 강한 야당을 원하는데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없는 현재와 같은 야당 환경에서는 집단의 깃발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서 논란이 돼온 집단지도체제 도입에 대한 첫 입장표명이다. 정 고문은 "당권주자들이 어떤 지도체제가 유리한지 이해관계를 따지기 전에 집권에 뭐가 도움이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야당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는 당내 비중 있는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정 고문의 생각이다. 현재 차기 당권주자 가운데서는 박주선 최고위원,천정배 의원 등이 정 고문과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계파색이 다른 김근태 상임고문과 추미애 의원 등의 중진들도 지도체제에 관해서는 정 고문 측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박지원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우 "거대 여당과 맞서기 위해서는 자갈보다는 바위들이 당안에서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내야 한다"며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대표 인물이다.

반면 정 전 대표와 손 고문 측은 당 대표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현 체제를 선호하고 있다. 그동안 지도체제에 대해 말을 아껴온 손 고문은 대의원 및 일반인 대상 여론조사 1위에 힘입어 최근 현 체제유지로 마음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권 경쟁에서 1위만이 살아남는 구조인 점을 고려할 때 손 고문이 자신감을 갖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486 그룹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적 배려 성격도 짙다. 최재성 백원우 의원 등 최고위원 출마를 준비 중인 친노 486 의원들은 집단지도체제에 대해 "이미 열린우리당 때 실패한 제도이고 신진세력의 지도부 진입을 막아 당이 경로당화될 우려가 높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손 고문이 입장을 정리하면서 정 전 대표 쪽으로 쏠려 있던 친노 486인사들 사이에서 분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강철 전 청와대 수석이 손 캠프에 합류한 가운데 이광재 강원지사가 손 고문의 정계 복귀 자리에 참석하는 등 양측의 관계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손 고문 측과 한결 가까워졌다. 당 관계자는 "486 그룹 사이에서 있던 손 고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재 · 보선과 지방선거를 함께 치르면서 많이 희석된 데다 당권경쟁에서도 가장 앞서 있어 우호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