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55)은 요즘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지난해 말 200억달러 규모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건설사업 수주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지경부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해주고 주위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이라는 뜻이다.

최 장관은 정체성이 모호했던 지경부를 정책 부처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년 9월 취임한 이후 굵직한 정책만 20여개를 내놨다. 24일 전력산업구조 발전 방안을 직접 발표하면서 장관으로서의 업무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기획예산처를 1999년에 떠났으니 벌써 10여년이 흘렀습니다. 국장 때 그만두고 나서 장관으로 다시 일해보니 어땠습니까. 관료 사회가 많이 바뀌었나요.

"과거 경제 관료들은 경제 발전의 주역이라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충만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의식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요. 공무원들의 사기도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고요. 사회 여건이 변했고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요할 수도 없긴 하지만 많이 안타까운 게 사실입니다. "

▼지경부를 이끌어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지경부는 과거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의 주요 기능을 통합해 실물 경제를 총괄하는 부처로 만들어졌습니다. 국회에서 봤을 때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총괄 부처로서의 위상은 조금 약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장관이 되면서 지경부를 정책 부처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민간 자율이 강조돼야 할 지금 무슨 산업 정책이 필요하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산업 간 종합적인 시너지를 높이는 조정자 역할을 지경부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표적인 종합 산업이 바로 원전입니다. "

▼정치인 출신으로 힘든 점은 없었는지요.

"이명박 대통령이 저를 장관으로 발탁했을 때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정치를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내각에 들어와서 일하는 동안에는 일로만 승부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독특한 입장(친박계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현실을 지칭)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곤혹스러운 적도 있었습니다. 세종시 문제가 한창 논란일 때 '세종시 햄릿'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가 아닌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문제였지만 저는 되도록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

▼해외 출장을 많이 가셨는데 한국의 이미지는 어떻던가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한국의 제품과 기술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잘 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볼 수 있죠.그동안 피나는 구조조정을 하면서 경쟁력을 쌓아왔기 때문에 이번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

▼대통령과 같이 나가신 적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정말 세일즈 외교의 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간 기업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셨기 때문인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정파를 떠나 나라를 위해 고생하시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해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해외 출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입니까.

"올해 초 민 · 관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이라크에 들어갔을 때는 솔직히 많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일본 사절단은 공항에만 있다가 돌아갔지만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내까지 들어갔습니다. 마침 총선 기간이어서 이라크 정부가 우리를 홍보하고 싶었나봅니다. 방탄조끼를 입고 차에 탔는데 장갑차에 헬리콥터까지 동원돼 호위를 하더군요. 호텔 방 유리와 벽에는 총알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중동이나 아시아의 자원 대국들은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민지나 외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방 선진국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죠."

▼위험을 무릅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제 좌우명이 '선공후사(先公後私)'입니다. 공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공적인 것이 먼저고 사적인 것이 나중이라는 생각이 확고합니다. "

▼황창규 R&D전략기획단장을 초빙할 때도 이라크 방문이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했습니다. 본인이 안 하겠다고 완강하게 거절하기에 이라크 방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개인적으로 황의 법칙도 만들고 돈도 충분히 벌지 않았느냐.선배들은 베트남전에도 참전했고 우리는 목숨 걸고 이라크에도 다녀왔다. 국가를 위해서 못 할 게 뭐가 있느냐'고 말이죠.나중에 들으니 황 단장은 계속 거절하면 애국심이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 수락했다고 합니다. 지경부 직원들 중에도 (황창규 단장) 초빙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설득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R&D에 대해 잘 아느냐.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는 평가와 관리나 잘 하자'고 말이죠."

▼원전 수출 전략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멕시코 인도 필리핀 등 많은 나라들이 한국형 원전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본 프랑스 등 기존 원전 강국들이 우리를 견제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절대 과욕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우선 순위를 정해서 좋은 건을 수주하는 전략으로 가야됩니다. UAE의 경우처럼 턴키 방식으로 수주하면 이익이 많습니다. 아쉬운 것은 금융입니다. 대규모 수주를 위해서는 자금 조달이 중요한데 아직 국내 금융이 이를 받쳐 주지 못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자금 조달을 다해줄 수 있지 않냐'는 질문을 받으면 너무 답답합니다. "

▼재정건전성 강화 때문에 산업 정책이 위축될 거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건전성 강화를 강하게 주장하셨는데 저는 그 자리에서 반대 논리를 제기했습니다. 기계적인 재정 균형을 맞추는 것보다 경제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합니다. 한 단계 뛰어넘어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하는데 재정 때문에 미래 투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더니 대통령도 동감했습니다. 장기적인 재정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미래 성장동력에 과감히 투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파이'를 키운 다음에 분배도 하자는 겁니다. 지금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

▼그동안 하루도 못 쉬었다는데 맞습니까.

"장관을 하면서 주말에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주말에 시간이 나면 지역구(최 장관은 현역 국회의원)도 챙겨야 했으니까요. 이 생활을 오래했다가는 굉장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운동도 거의 못해 살이 찌고 담배도 늘었습니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까 힘들어서 술은 못 마시겠더라고요. 이전에는 소주 한두 병까지 했는데 지금은 한 병도 힘듭니다. "

▼국회로 돌아가는 심경은 어떻습니까.

"제 정치 출사표는 '경제를 바꾸러 정치판으로 간다'였습니다. 정치가 제대로 안정이 안 되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리더십을 안정시키면서 경제 성장에 매진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정치는 경제 문제도 정쟁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해서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앞섭니다. 국회로 들어가면 이 같은 풍토를 바꾸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

서욱진/서기열 기자 venture@hankyung.com


◆ 최경환 장관은

최경환 장관은 지난해 9월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경북 경산 출신으로 대구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최 장관은 대학 4학년인 1978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80년부터 1999년까지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청와대 기획예산처 등에서 근무했다. 1995년에는 런던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9년 한국경제신문으로 자리를 옮겨 논설위원과 편집국 부국장 등을 지냈다. 2004년 경북 경산 · 청도에서 1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으로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제4정책조정위원장 등을 거쳐 200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간사로 일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한나라당 수석정조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을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