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대규모 인수 · 합병(M&A)은 주식시장에서 기업들의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인식됐다. 금융시장의 돈줄이 마르면서 M&A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기업들은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우건설 인수 이후 곤욕을 치른 금호그룹 사태를 계기로 주식시장에서는 '승자의 저주'라는 말까지 유행했다.

그러나 대규모 M&A를 보는 시장의 시각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최근 해외 기업 인수를 성사시킨 호남석유화학 한화케미칼 등은 증권업계의 호평 속에 주가가 급등하는 'M&A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해외 기업 인수가 주가에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두산그룹.두산인프라코어는 2007년 7월 미국 건설장비 제조업체 밥캣(현 두산인프라코어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인수 당시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좋았다. 밥캣을 통해 해외 건설장비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주가는 2007년 10월15일 사상 최고가(4만4000원)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5월 주식시장에선 밥캣 인수에 따른 '후폭풍'으로 두산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루머가 나돌았고,이로 인해 두산 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급락했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루머만으로 전체 계열사 주가가 급락한 것 자체가 M&A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그만큼 컸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밥캣은 그러나 지난 2분기에 이자 · 세금 · 감가상각비 차감전 이익(EBITDA)이 600만달러를 기록,7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반면 최근 기업들의 해외 기업 M&A는 기업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호평을 받으면서 주가 상승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화케미칼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3일 중국 태양광 모듈 생산업체 솔라펀을 인수한다고 밝힌 이후 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올 들어 줄곧 2만원 선을 밑돌던 한화케미칼 주가는 이달 들어서만 35.84% 급등해 지난 20일 2만6150원까지 치솟았다.

미래에셋증권은 한화케미칼의 12개월 목표주가를 당초 2만원에서 3만1000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하면서 "솔라펀 인수로 한화케미칼은 중국 시장에 보다 신속하게 진출할 수 있고,기존 태양전지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호남석유화학 역시 지난달 16일 말레이시아 석유화학회사 타이탄을 인수한다고 발표한 직후 증권사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이희철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타이탄 인수로 호남석유화학은 아시아지역 2위 업체로 올라설 수 있고,진입장벽이 높은 동남아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인수가 기업가치를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긍정적인 평가에 힘입어 M&A 발표 직전인 지난달 15일 14만8500원이던 호남석유화학 주가는 꾸준히 오름세를 타 지난 20일 18만9000원까지 상승했다.

M&A 컨설팅업체 ACPC의 남강욱 부사장은 "기업들이 과거 실패 사례에 대한 학습 효과로 무리한 M&A보다는 철저하게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들에 대한 인수를 추진하면서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