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안에 여섯 잔의 칵테일 만들기,수십 가지 술의 맛과 아로마 향만 맡고 이름 맞히기,즉석에서 주어진 음식에 맞는 칵테일 만들기,50파운드 내로 재료를 직접 구입해 새로운 칵테일 제조하기….

만화나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달 그리스에서 열린 세계 최고의 바텐더 대회 '월드 클래스'의 경기 내용이다. 이 대회에서 서울 리츠칼튼호텔의 엄도환씨(34 · 왼쪽)가 예선을 거쳐 올라온 24명의 각국 대표를 물리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척박한 국내 바텐더 문화에서 이룬 쾌거다.

엄씨가 이번에는 또 다른 이벤트에 나선다. 리츠칼튼호텔 리츠바에서 25~27일 열리는 '월드 클래스 배틀'이다. 엄씨는 이번 행사에서 지난해 '월드 클래스' 4위 입상자이자 주류회사 디아지오의 필드 앰배서더(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임재진씨(28 · 오른쪽)와 함께 나와 코스모폴리탄,애플 마티니 등 기존의 칵테일을 자신만의 레시피로 만들어 선보인다.

두 바텐더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월드 클래스' 한국대표 선발대회에서 엄씨는 3위에 머물렀고 임씨는 우승했다. 당시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였지만 지난달 열린 월드 클래스 대회를 앞두고 임씨는 지난해 대회의 경험에서 나온 귀중한 정보를 엄씨에게 알려줬다. 엄씨는 "재진이가 세계 대회 경험을 알려준 것이 준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가장 큰 도움은 통역에 관한 조언이었다. 임씨는 지난해 대회에서 술을 잘 알지 못하는 현지 유학생에게 통역을 맡겨 고생했다. 맑은 생크림을 주문했지만 경기장에서 덕지덕지한 크림을 구입해야 했고 초콜릿 시럽은 구하지도 못했다. 임씨는 "'월드 클래스'는 칵테일의 맛을 평가하지만 어떻게,왜 만들었지 등 프레젠테이션도 중시하는데 통역이 제 얘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담을 들은 엄씨는 주류회사에서 근무한 전문 통역사를 국내에서 데려갔고,프레젠테이션을 잘했다는 심사평을 들었다.

엄씨는 월드 클래스에서 기억에 남은 종목으로 즉석에서 정해진 '레시피로 칵테일 만들기'를 꼽았다. 평소 소홀한 분야인데다 계란 흰자만 제거하는 기계가 오전 경기에서 고장나 애를 태웠다. 다행히 재료를 직접 구입해 경쟁하는 마켓 챌린지 부문에서 우승해 잃은 점수를 만회했다.

임씨는 지난해 대회 때 국내 회식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충성주'(머리를 식탁에 부딪쳐 만드는 폭탄주)를 선보였다.

엄씨와 임씨는 "영국,싱가포르 등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바텐더와 손님이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며 아쉬워했다. "우리는 양주를 병째 시켜 마시거나 여자와 함께 가는 곳이 바(Bar)라고 생각하죠.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칵테일 한 잔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주류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