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서 떠도는 새터민 위해 이 악물고 일했어요"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서 의류임가공 업체를 운영하는 강학실 수진어패럴 대표(44 · 사진)는 새터민(북한이탈주민)이다. 그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온 지 8년여 만에 의류 제조업체 사장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지난해 8월 직원 3명으로 창업한 강 대표는 남성용 재킷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만든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레노마 이신우옴므 올젠 파코라반 등 유명 브랜드 제품이 수진어패럴에서 만들어진다. 일본에 수출도 한다.

창업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좋다. 강 대표는 "지난해 2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4억원의 매출을 올려 연말 목표 7억원 달성은 거뜬하다"며 "일본에서 수주한 물량도 7억원어치가 된다"고 소개했다. 일감이 넘치면서 종업원도 25명으로 늘어났다.

고향인 평양에서 전문대를 졸업한 뒤 평양시내 한 호텔에서 6년간 근무한 강 대표는 1999년 초 처음 탈북을 시도했다. 추운 겨울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하는 과정에서 붙잡혀 감옥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고모와 삼촌이 살고 있는 중국으로 2001년 2차 탈북에 나선 강 대표는 태국을 거쳐 2002년 4월 한국땅을 밟았다.

그가 남한에서 잡은 첫 직장은 병원.1년간 간호조무사 학원을 다닌 뒤 자격증을 딴 강 대표는 2004년 3월부터 병원에서 환자를 돌봤다. 하지만 6개월 만에 병원을 그만두고 네트워크 판매회사인 하이리빙에 들어가 2년여간 영업전선을 누볐다. 강 대표는 "당시는 무슨 일이든 해서 남한 사회에 정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며 "주위의 수많은 탈북자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해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런 이유로 직장을 그만둔 강 대표는 2006년 7월부터 탈북여성의 인권회복과 취업알선을 위한 봉사활동을 폈다. 그는 탈북여성인권연대 대표를 맡아 미국과 한국 정부,비정부기구(NGO)로부터 지원을 이끌어 냈다. 또 탈북여성을 대상으로 취업교육을 하는가 하면 중국에 있는 탈북여성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을 했다.

강 대표는 "이런 활동을 하다보니 탈북여성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데는 무엇보다 일자리를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돼 창업을 결심했다"며 "재봉틀을 다룰 줄 아는 탈북여성을 채용할 목적으로 의류임가공 사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그동안 모은 돈과 빌린 돈 2억여원,중소기업진흥공단 및 신용보증재단 지원자금 9000만원 등 2억9000여만원으로 경기도 부천에 530㎡ 규모의 공장을 마련하고 중고기계를 들여놓았다. 이 회사엔 탈북여성 7명이 미싱사 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처음 서툴렀던 탈북 여성 근로자들의 솜씨가 좋아졌다"며 "앞으로 탈북여성 채용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 말까지 작업할 물량을 이미 확보했다. 매일 밤 9시까지 2시간 이상 잔업해야 납기를 맞출 수 있다. 최근엔 주문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서울 신월동에 희망어패럴이란 별도법인을 세웠다. 서울시로부터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에 나서는 시회적 기업으로 지정받은 이 공장에는 탈북자 12명(여성 10명,남성 2명) 등 모두 31명이 일하고 있다.

강 대표는 "사업가로 성공해 탈북여성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며 "수진어패럴을 자체 브랜드로 백화점 등에 독자 매장을 운영하는 등 패션업체로 키우는 게 꿈"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계주 기자 lee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