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는 비만증을 앓는 환자입니다. "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지난달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KB금융이 경쟁회사들과 비교해 과다 인력,고령화,고임금 구조로 허리가 휘고 있다는 의미였다. 덩치만 컸지 약골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KB금융의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은 자산규모나 수익면에서 '리딩뱅크' 지위를 굳건히 지켜 왔다. 하지만 최근 최고경영자(CEO)들이 임기 도중 물러나면서 1년 가까이 경영 공백을 겪었다. 직원들의 사기는 꺾였고 영업력은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때 6만3200원(2009년11월23일)까지 올랐던 주가도 추락했다.

어 회장 취임 후 KB금융은 재도약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국민은행은 물론 다른 계열사의 경영진 교체와 조직개편을 마무리했다. 체질개선에도 착수했다. 쓸데없는 부분은 털어내고 강한 부분은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한 작업이다.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지만,이전과는 달라지려는 움직임은 평가할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화려한 시작,그러나…

2001년 4월11일 밤 서울 여의도 대우증권빌딩 7층.당시 최범수 국민 · 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회 대변인은 "두 은행의 합병본계약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고 발표했다. 총자산 185조3600억원,고객수 2600만명의 초대형 은행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해 11월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까지 성공한 국민은행의 앞날은 장밋빛일 것만 같았다.

2007년 11월 국민은행 이사회는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키로 결의했다. 이듬해 9월 국민은행을 주력 계열사로 거느린 KB금융지주가 공식 출범했다. 10여년간 국내 최고 은행 자리를 지켜 온 국민은행이 출범시킨 지주회사였기 때문에 국내 금융시장을 점령할 것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KB금융은 출범 후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초대 황영기 회장은 우리은행장 재임 시절 해외 파생상품에 투자한 것이 문제가돼 물러났다. 작년 12월 회장에 선출됐던 강정원 당시 국민은행장도 당국의 외압설 등이 불거지면서 자진 사퇴했다. 그 사이 KB금융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올해 2분기에는 335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출범 이후 처음,출범 전 국민은행까지 따지면 2004년 4분기 이후 첫 적자였다.

◆기대 반 우려 반 출범한 '어윤대 호(號)'

KB금융은 지난달 13일 어윤대 전 국가브랜드위원장을 새 회장으로 선임했다.

어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직원들에게 "질병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해야 치유책을 찾을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외과적 수술을 할 수 있다"며 "질병의 근원적 치유를 위해 전 임직원이 머리를 싸매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독려하고 있다. 어 회장은 △경영 효율성의 극대화 △사업다각화를 통한 지속성장의 기반구조 구축 △신규 수익원 창출 △글로벌 경쟁력 제고 등을 네 가지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국민은행은 내부 인사 위주로,지주회사는 외부 인사 위주로 경영진을 구성했다. 국민은행의 영업력 회복을 위해 '영업통'인 민병덕 부행장을 행장으로 선임했다. 부행장들도 내부인사로 채웠다. 대신 전략을 담당하는 지주회사에는 외부에서 능력 있고 참신한 인물을 영입했다. 임영록 사장은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냈다. 윤종규 재무담당 부사장,김왕기 홍보 · IR 담당 부사장은 각각 회계사,언론인 출신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전문성을 쌓은 인물이다. KB금융 체질 개선을 위해 만든 '그룹변화혁신 태스크포스팀(TFT)'은 증권사 임원 출신인 박동창 부사장이 이끌고 있다.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어 회장은 틈만 나면 글로벌 기업 얘기를 꺼낸다. 그들의 흥망성쇠에서 배우자는 뜻에서다. 100년 동안 미국 1등 기업이었던 제너럴모터스(GM)도 어 회장이 자주 언급하는 기업이다. KB금융이 자칫하면 GM처럼 될수 있다는 경고다.

이런 인식에 따라 어 회장의 KB금융 개혁작업은 두 가지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체질 개선이고 다른 하나는 영업력 회복이다. 체질 개선은 그룹변화혁신 TFT에서 체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영업력 회복을 위한 노력은 착착 가시화되고 있다. 국민은행은 이달에만 'KB 와이즈 외화정기예금'과 'KB 와이즈 플랜 적금&펀드'를 잇따라 내놨다. 조만간 본점 및 후선업무센터 인력 750명도 영업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어 회장도 대기업 CEO들을 찾아가 만나며 직접 발로 뛰는 현장 경영을 펼치고 있다. 취임 후 구학서 신세계 회장,이석채 KT 회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

KB금융은 내년 초 KB카드를 설립한다. 은행 안에 포함돼 있는 카드사업을 분사시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기 위해서다. 업무 영역이 중복되는 KB투자증권과 KB선물도 1년 후 합병할 계획이다. 확실한 리딩뱅크 위상을 되찾기위한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