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산에서 토막난 유골이 발견된다. 조사 결과 인근에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짓으로 판명된다. 남편이 사망한 뒤 장례 치를 돈이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랬다던 할머니는 2년 동안 남편의 연금을 수령한 증거가 나오자 실은 남편이 시켜서 저지른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금실 좋던 남편이 자신의 사후(死後) 아내가 받게 될 유족연금이 너무 적자 자기 사체를 몰래 처리한 다음 잠시 어디 간 것처럼 속이고 계속 연금을 받아 생활하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미국 드라마 '과학수사대(CSI) 라스베가스'편을 통해 방송된 에피소드의 하나다.

극을 위한 허구라도 지나치다 싶었는데 일본에선 실제 유사한 일이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최고령 할아버지(만 111세)로 알려진 가토 소겐씨가 실은 1980년께 숨진 뒤 집에 유골 상태로 방치돼 있다 발견된 데 이어 만 104세라던 미쓰이시 기쿠에씨 역시 유골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건의 개요는 드라마와 놀랍도록 흡사하다. 미쓰이시씨의 장남(64)은 유골을 빻아 가방에 넣어둔 채 모친의 연금과 장수축하금 등을 받아 쓰고,가토씨의 장녀(81) 역시 아버지가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 2004년 숨진 어머니의 유족연금을 챙겼다는 까닭이다. 미쓰이시씨 장남이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로 장례비가 없었다는 핑계를 댄 것도 같다.

화들짝 놀란 일본 정부가 자치단체별로 급히 100세 이상 고령자의 생존 여부를 확인했더니 행방이 묘연한 사람만 400명이 넘는다는 마당이다. 조사 대상 연령을 낮추면 유령 노인이 얼마나 될지 짐작하기 어렵다고도 한다.

고령자가 워낙 많은 데다 사생활 문제도 있어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일일이 파악하기 힘들어 그렇다는 건데 남의 나라 얘기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고,1인 가구는 무섭게 늘고,국민의 38.2%는 아무런 노후 대책도 없다고 하는 탓이다.

대비책이 있다는 가정의 대부분도 기껏해야 가장(배우자)의 국민연금 정도다. 그러니 연금 수령자가 사망하면 쥐꼬리만한 유족연금 외엔 다른 수입이 없기 십상이고,나이든 자식 또한 부모를 부양하기는커녕 부모 연금에 기대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대로라면 얼마 안가 우리나라에서도 유령 노인 내지 백골 장수 노인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셈이다. 암담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