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할 곳은 없는데 예금은 밀려든다. "

요즘 은행 영업담당자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연 3.8~4% 정도로 낮은 데도 불구하고 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몰려오고 있어서다. 은행 정기예금은 올해 상반기에만 60조원 늘었다. 예금은 밀려오는데 은행들이 대출할 곳은 마땅치 않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예전만큼 주택담보대출이 늘지 않는다. 기업 대출을 늘리기엔 아직 불안하다. 우량기업들은 현금을 쌓아놓고 있어 은행 대출을 쓰지 않는다.

은행들은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예금은 가급적 저원가성 중심으로 늘리고 떼일 염려가 없는 대출부터 금리를 인하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조달비용을 낮추고 자산운용 규모를 늘리자는 취지에서다.

◆"저원가성 예금을 늘려라"

은행들은 저원가성 예금을 늘리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대부분 은행은 올해 초 영업점의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인 영업점 성과지표(KPI)에 저원가성 예금 항목의 비중을 높였다.

우리은행은 KPI에 '베이직 어카운트(basic account)' 항목을 신설,저원가성 예금 유치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하나은행도 신규 고객 유치를 KPI 평가항목으로 신설하고 저원가성 예금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은행들은 각종 월급통장과 개인 사업자 전용통장 등을 유치하기 위해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수수료 면제 혜택 등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임대사업자 통장과 최대 3년간 수수료를 면제받을 수 있는 입출금 통장인 베이지백 플러스 통장,직장인 재테크에 초점을 맞춘 김대리 패키지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하나은행은 부자되는 가맹점 통장에 월 100회 수수료 면제 혜택 등을 부여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금이 몰려 들고 있지만 다른 투자처가 생기면 언제든지 은행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며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활동 고객 수를 늘려 저원가성 예금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대출금리는 내리고

우리은행은 24일 주택담보대출의 최고 금리를 최고 0.3%포인트 인하했다. 금융채 금리에 연동하는 6개월 변동형 주택대출 금리는 연 5.01~6.03%에서 연 4.71~5.73%로 낮아졌다. 1년 변동형 대출금리도 연 5.74~6.76%에서 연 5.44~6.46%로 떨어졌다. 고정금리형 주택대출 금리 역시 3년 만기 기준으로 연 5.72~6.74%가 적용돼 0.3%포인트 내렸다. 코픽스 연동 주택대출의 금리는 0.1%포인트 하락했다.

신한은행은 이달부터 엘리트론과 직장인신용대출 등 일부 신용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의 금리 감면 항목에 고객의 지점 접근성과 기여도 등을 추가해 금리를 최고 0.5%포인트 인하했다. 중소기업 대출의 경우 지난 8일부터 2조3000억원 한도에서 운전자금대출과 시설자금대출의 금리를 1년간 각각 최고 0.7%포인트와 0.2%포인트 낮춰 적용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5월 중순 소액 서민대출 상품인 '하나 희망둘더하기 대출'의 금리를 연 13%대 중반~16%대 중반에서 9%대 중반~14%대 후반으로 낮췄다. 또 매년 대출 연장시점에 연체일수가 30일 이내면 1%포인트씩 최고 4%포인트까지 금리를 감면해주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인하는 상반기에 대거 들어온 예금을 운용하기 위한 목적"이라며 "중소기업 상생과 서민경제 안정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