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방침에 대해 중소기업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방향은 맞지만 당장 1차 협력업체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과 1차 협력사에 이어 1차 협력사와 2,3차 협력사 간 공생관계를 만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대 · 중소기업 갈등의 본질은 대기업의 부당한 납품단가 깎기 등인데 하도급법을 중소기업 간에도 확대 · 적용하겠다는 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란 볼멘소리도 나왔다.

◆"취지는 공감,당장 시행은 곤란"

현행 하도급법 규정은 일정 조건(매출 혹은 직원 수가 두 배 이상 차이나는 원 · 하도급 관계)을 충족하는 대기업-1차 협력사뿐만 아니라 1차 협력사-2,3차 협력사 간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1차 협력사-2,3차 협력사 간에는 실제 적용이 잘 안 되는 게 사실이다. 결제대금을 180~270일짜리 어음으로 끊어준다거나 납품단가를 무리하게 낮추는 사례도 많다는 게 중소기업들의 전언이다.

인천 남동공단의 기계 부품업체 S사장은 "2,3차 협력업체 간에는 불공정거래가 있어도 하도급법의 적용을 받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법 개정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자동차 부품 2차 협력업체의 S대표도 "현재 결제대금을 120일짜리 어음으로 받는데 60일로 단축되면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2차 협력업체 입장에선 (법 개정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반겼다.

하지만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경영난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제대금 60일 이내 지급' 조항이 대표적이다. 인천에 있는 중소 전자제품 제조업체 A사 K대표는 "지금도 협력업체에서 원재료를 납품받은 뒤 90일짜리 어음을 끊어주는 것도 벅찬 실정"이라며 "(법이 바뀌면) 이를 60일로 단축해야 하는데 당장 필요한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반발했다.

울산지역의 플랜트 제조업체 B사 M대표도 "현재 하도급업체에 결제대금을 90일짜리 전자어음으로 끊어주는데 이를 60일로 당기려면 회사 경영을 할 수 없게 된다"며 "결제금액이 한두 푼도 아니고 수십,수백억원대의 자금을 어떻게 30일가량 앞당겨 지급할 수 있겠나"라고 불만을 토해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하도급법을 확대 시행하겠다는 방향은 맞다고 볼 수 있지만 공장 건물 등 전 재산을 담보로 잡힌 채 은행 대출을 받아 회사를 꾸려나가는 중소기업들에 대금 결제일을 단축하라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법 개정을 하기 전에 은행에서 결제대금 지급 용도에 대해선 추가 대출을 해주는 등 현금유동성을 유지하는 보완 방안을 만드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본질은 대기업의 부당행위"

일각에선 하도급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공정위의 방침이 대 · 중소기업 문제의 본질을 간과한 것이란 비판을 제기했다. 경기 반월공단에 있는 대기업 1차 협력사 C사의 P대표는 "우리가 어렵더라도 하도급업체에 현금 결제를 해주고 어음도 50일 이내로 끊어주는 등 나름대로 상생을 하고 있다"며 "문제는 제조원가가 오르더라도 대기업에 단가 인상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1차-2,3차 협력사 간 거래 관행보다 대기업과의 관행을 개선하는 게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할 선결 조건이란 지적이다.

자동차부품조합 관계자도 "현재도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대기업의 1차 협력사 중 상당수가 현행 하도급법의 적용을 받아 2,3차 협력사들과 상생 협약을 맺고 있는 상태"라며 "하도급법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고 해도 그 효과는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류길상 중소기업중앙회 기업협력팀장은 "지금 대 · 중소기업 관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공정하게 매겨달라는 것,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하도급법을 개정해 적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은 대 · 중소기업 간 문제를 중소기업 간 문제로 보이도록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태명/이계주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