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요 감소의 원인이 무엇이든 실직은 결국 사회가 해당 근로자의 일을 같은 급여 조건으로는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양산업의 일거리처럼 세상이 그 일을 영구적으로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고,일상생활에 긴요한 일이라도 수요자들이 일시적으로 움츠러들어 구매를 줄였기 때문에 해당 일거리가 줄어든 경우도 있다.
항구적으로 용도 폐기된 일이라면 실직자는 빠른 시간 내에 시장이 수용하는 다른 적절한 생업을 찾아야 한다. 불황을 예상한 소비자들이 한동안 덜 쓰려고 지갑을 닫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일거리가 줄어든 경우라면 해당 근로자들은 잠시 다른 일에 종사했다가 경기 회복기에 다시 원직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답이다. 그러나 실직자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이 간단명료한 정답이 매우 고통스럽다.
당장 실직 기간 중 생계유지 방안이 막막하고 다시 새로운 직장을 찾는 일도 불확실하다. 설사 새 직장을 얻더라도 낯설고 서툰 일터가 정들고 익숙한 옛 직장보다 더 나을 까닭이 없다. 근로자들은 모든 해고에 반대하고,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린 정치는 한번 채용한 근로자를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고용보호법제를 채택하기도 한다. 현재 선진국 가운데 고용보호법제를 채택하지 않은 나라들은 영미권과 덴마크 등 몇 나라뿐이다.
원래 시장경제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생산제품을 구입할 권리는 그들이 원하는 상품을 나 스스로 생산했거나 그 생산에 일조하였을 경우에만 허용된다. 실직은 시장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근로자에게서 이 권리를 박탈하는 조치인 셈이다. 따라서 실직될 근로자로 하여금 일자리를 원래대로 유지하도록 하는 고용정책은 명백히 반시장적이다.
고용보호법제와는 다르지만 사회적 필요성이 검증되지 않은 인공적 일자리를 정부의 재량적 판단으로 제공하는 재정정책도 유사한 효과를 유발한다. 확장적 통화정책은 민간 부문의 수요를 창출하는 정책인데,이 수요 창출도 시장경제의 적법한 권리를 부여받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재정확대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총수요 확대에 의존하는 고용정책은 일반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지만 결국 반시장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떤 산업의 사양화가 유발한 실업은 새로 출현한 신흥산업이 흡수해야 하고,일시적 불황은 잠시 다른 일을 하며 견뎌내야 한다. 고용창출 정책의 핵심은 총수요 확대보다는 신흥산업이 계속 일어나고 다른 일거리가 주변에 항상 있도록 투자요건을 조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 실직자가 새로운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구직구인 정보를 널리 확산시켜야 하고,구직기간 중 실직자의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고용보험제도도 정착시켜야 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