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산업이 약진하고 있다. 지난해 350만대의 국내 자동차 생산으로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세계 시장에서도 '싸구려 차'라는 이미지를 벗고 성능,디자인,품질면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베르나가 2010년 JD파워의 신차 품질평가에서 소형차부문의 가장 우수한 등급을 받은 게 단적인 예다. 준중형급에서는 현대차의 아반떼가 3위,미니밴에서는 기아차의 카니발이 2위를 차지했다. 기아차의 쏘울은 국내 자동차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중대형차에 대한 세계 시장의 평가도 과거와 달라졌다.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는 2009년 북미 국제오토쇼에서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이 차는 JD파워의 신차품질 조사에서도 일반 브랜드 부문 1위에 올랐다.

생산액,부가가치,수출액,고용 등에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자동차산업이 융성해지면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뉴스가 반갑게 들리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업계를 들여다 보면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다. 대법원은 최근 하청업체 직원 2명이 현대차를 대상으로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결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하청업체 직원들을 파견근로자로 보고,파견기간이 2년을 경과한 경우 현대차의 근로자로 인정하라는 게 대법원 판결의 골자였다.

이번 판결은 현재 약 7000여명의 사내 하청근로자를 활용하고 있는 현대차를 비롯해 기아차,GM대우 등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노동부는 자동차업체를 포함한 20~3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할 예정인데,불법 파견으로 드러나면 상당수의 사내 하청 근로자를 직접 고용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물론 현대차 등 완성차 업체들이 사내 하청 근로자들을 활용하는 것은 정규직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경우 일단 고용하면 경영상의 어려움이 있어도 해고하기가 매우 어렵고,공장간 배치 전환에도 노조와 근로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대법원 판결로 완성차업체들은 사내 하청 근로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자 노력할 것이다. 사내 하청 근로자의 처우는 좋아지겠지만 오히려 사내 하청 근로자의 고용이 줄어드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할 수 있는 획기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타임오프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난 8월11일 기아차 노사는 첫 상견례가 무산된 지 3개월 만에 임단협 교섭을 위해 마주 앉았지만 대화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기아차 노조가 "잔업과 특근을 정상화하는 결단을 내린 만큼 이를 왜곡하지 말고 성실교섭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올해 노사관계의 가장 큰 화두인 타임오프제를 깨뜨리는 선봉에 서 있는 한 사측과의 타협점을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처럼 규모가 큰 기업의 노조가 전임자의 급여를 회사 측에서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노조 전임자의 급여를 회사에서 전적으로 부담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한국과 유사한 기업별 노조 시스템을 갖고 있는 일본도 노조가 노조전임자 급여를 부담하고 있다.

타임오프는 전임자 급여를 회사가 부담해온 관행을 일시에 철폐하는 데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같이 타임오프제도로 예외로 인정받는 부분은 고맙게 받고 추가적으로 노조전임자가 필요하면 조합비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 대공장 노조로서 책임있는 행동일 것이다.

박영범 < 한성대학교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