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방중 행보에서 주목할 대목은 행선지다.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방문한 지린성 지린과 창춘 일대는 북한이 말하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 빨치산 투쟁 성지'로 북한 노동당 정권이 주장하는 정통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김 주석이 다닌 우쑹소학교와 그가 유격대를 창건했다는 안투현 등이 이 일대에 있다.

시점 또한 미묘하다. 다음 달 북한은 노동당 대표자회의를 개최한다.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은 권력 이양과 승계에 앞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代)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기획 방중의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방중 첫날 김 주석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위원중학교와 항일투쟁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묘역과 기념관이 있는 베이산공원을 방문했다. 베이징의 한 북한전문가는 "소위 민족혁명의 성지를 순례한 것은 김정은의 권력세습이 역사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포석"이라고 지적했다. 김 주석이 청년 시절(1927년) 지린에서 '조선공산주의 청년동맹'을 창립했다고 북한이 선전하는 청년절(28일)과 방중시점이 비슷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외교용이 아닌 내부용"(청와대 고위관계자)이라고 볼 만한 증거인 셈이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