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채권 금리가 연일 하락(채권가격은 상승)하고 있다. 특히 5년 이상 국채 등의 하락 속도가 가파르다.

27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4%포인트 하락한 연 4.43%를 기록했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17일까지만 하더라도 연 4.75% 수준에서 움직였지만 열흘 새 0.32%포인트나 떨어졌다. 20년 만기 국고채 금리 역시 0.01%포인트 하락,연 4.62%를 나타냈다. 열흘 새 하락폭은 0.28%포인트에 달했다.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이날 보합 수준을 나타냈지만 열흘간 하락폭은 0.3%포인트로 같은 기간 중 3년 만기 국채 금리의 하락폭(0.21%포인트)을 크게 웃돌았다.

◆"과거 논리가 통하지 않는 시장"

염상훈 SK증권 연구원은 "펀더멘털이 통하지 않는 시장이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채권금리는 성장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수준에서 형성돼 왔는데 지금은 이것과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성장률 6% 안팎에 물가상승률 3% 수준을 더하면 9%,내년 성장률 4.5% 안팎에 물가상승률 3% 수준을 감안하면 국채 금리는 최소 연 5~6%가 돼야 하는데 4%대로 접어든 이후에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염 연구원은 "글로벌 자금 흐름을 보면 경제가 안 좋고 금리가 낮은 곳에서 돈을 빌려 경제가 좋으면서도 금리가 높은 곳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가 급증하고 있다"며 새로운 트렌드를 설명했다. 중국의 외환 포트폴리오 변경이 최근 시장에 충격을 줬지만 그 바탕엔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자금이 꾸준히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이 깔려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리먼 사태 직후 수준으로 하락할 수도"

장기물의 금리 하락 속도가 단기물의 하락 속도보다 빠른 것도 캐리 트레이드의 영향이다. 미국과 한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비교해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미국의 경우 최근 연 2.5~2.6% 수준이지만 한국은 급락한 이후에도 이보다 1.8%포인트 이상 높다. 자금을 글로벌하게 운영하는 외국 기관투자가 입장에서는 한국의 국채는 상당기간 매입해도 좋다는 판단을 내릴 만하다.

글로벌 경기에 나타난 이상징후는 이 같은 흐름을 상당기간 지속시킬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종수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 경기가 더블 딥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상당기간 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며 "그 여파로 현재 4~5% 수준인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진다면 물가상승률도 더불어 떨어지기 때문에 채권 금리가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시장에서는 국채 금리가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 수준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5년 만기 국채 금리의 경우 2008년 말 연 3.78%까지 하락했고,10년 만기는 당시 연 3.81%까지 떨어졌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추가 인상하지 않는다면 경우에 따라 이보다 더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