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의 한국정치 미국정치] (31) 흠 있는 장관 후보자, 美서는…
대한민국 국회 인사청문회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후보자의 정책 방향이나 구상보다는 개인적인 흠집,비리 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물론 행정 부처의 장이 되려면 그에 합당한 자질을 갖춰야 한다. 그 자질은 법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을 들 수 있는데 법적인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다. 최소한의 법도 지킬 줄 모르는 전과자가 장관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 문제는 도덕성이다. 도덕적 기준은 각국의 문화와 전통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도덕성이 더 중요해 보인다. 국민들이 반복되는 지도자들의 각종 비리 의혹에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5%는 능력과 무관하게 위장전입자는 장관이 되기에 부적절하다고 했다. 부동산 투기,탈세,위장취업,병역기피,말 바꾸기 등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사실 지도자들은 국민이 본받고 싶어하는 '롤 모델'이기 때문에 약간의 도덕적 흠이 있어도 큰 실망감을 준다.

미국 인사청문회에서는 유명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현재 연방 대법원의 유일한 흑인 대법관인 클라렌스 토머스에 대한 청문회였다. 당시 아니타 힐이라는 브랜다이스 법과대의 흑인 여성 교수가 청문회에 출석해 토머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이때가 1991년 10월10일이었다. 그 뒤로 청문회는 사흘간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됐다.

공화당 의원들은 보수파인 토머스를 감싸줄 목적으로 질문을 시작했는데 힐에 대한 질문 내용이 걸작이다. "강제로 침대에 끌려갔습니까?" "아니요. " "그럼 강제로 키스를 했습니까?" "아니요. " "그럼 강제로 몸이나 가슴을 더듬었습니까?" "아니요. " 공화당 의원들은 "그럼 무슨 성희롱이오.우리를 놀리는 거요?"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숨을 죽이고 그녀의 답변을 기다렸다. "전에 토머스와 같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는데 자기 성기의 길이가 6인치이고 두께가 3인치나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기막힌 진술이다. 그러나 전원이 남성인 상원 법사위는 이를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토머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 결정은 여성단체들을 격분케 했다. 여성단체들은 힘을 합쳐 "여성을 의회로 보내자"는 운동을 시작했고,그 해에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이 의회에 진출했다. 전부 남자로만 이뤄졌던 상원 법사위에는 지금 두 명의 여성의원이 있다.

미국 인선의 원칙은 엄격하다.

1.장관이 되려면 의원직을 사퇴하고 특별선거를 통해 후임자를 선출해 인수 · 인계를 한 뒤 청문회에 나간다. 이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2.청문회 이전에 면밀한 조사를 해 도덕적인 흠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다른 후보를 찾는다.

3.청문회 전에 야당 지도자를 조용히 만나 의견을 들어보고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면 다른 후보자를 물색한다.
4.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고집을 세워 장관 임명을 강행할 수는 없다.

이런 기본 원칙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장관직을 지명받은 후보가 이를 사양하는 경우가 많다.

전 미 연방 하원의원 · 한국경제신문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