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지난 27일 저녁 서울시내 모처에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를 은밀하게 만났다.

그날 낮에 있었던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김 후보자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지자 도저히 돌이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의총에선 김 후보자의 사퇴 발언들도 적지 않았다. 임 실장과 정진석 정무수석 등이 나서 김 후보의 임명동의안 처리를 도와달라며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각종 여론조사는 김 후보자의 사퇴 이외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30~31일 예정된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격한 반응들이 나올 게 뻔하고 이렇게 되면 김 후보자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도 깊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다급했다. 임 실장을 만난 김 후보자는 여권의 기류를 읽은 듯 먼저 사퇴의사를 밝혔다. 김 후보자는 "문제가 있었다면 총리직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런 부분(의혹)에 대해 실수한 것을 제외하고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그렇지만 공정한 사회는 도덕성이 기초가 되는데 총리 후보자로서 공정사회 추구에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대한민국의 성공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나의)거취에 대해 대통령에게 말해 달라"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 실장은 이튿날 김 후보자의 이런 뜻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청와대는 당초부터 모든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지난 23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조금 더 엄격한 인사 검증 기준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은 이미 한두 명의 낙마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고 한 참모는 전했다. 그는 "임 실장이 지난 26일 '제기되는 문제를 유념하면서 국회 움직임을 보고 있다'고 했을 땐 내부적으로 김 후보자의 사퇴를 어느 정도 기정사실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27일 확대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공정한 사회를 위해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며 "청와대가 출발점이자 중심이 돼야 한다. 나부터 돌아보겠다"고 한 것은 김 후보자와 일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