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품도 기분이나 감정 등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감정 휴리스틱(affect heuristic)' 때문이다. 그 비밀을 풀어보자.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 마시려면 버튼을 선택해야 합니다. 고급커피와 일반커피라고 적혀 있는데,간혹 두 커피의 값이 똑같은 자판기를 볼 때가 있습니다. 똑같은 값인데 왜 하나는 고급이고 하나는 일반커피일까 궁금해집니다.

옆에서 누군가 커피를 고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고급커피 버튼을 누릅니다. 왜일까요. 당연히 그게 더 고급일 것 같은 느낌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두 커피의 품질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이성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답할 것입니다. 다만 감성적으로는 왠지 고급커피가 더 맛있을 것 같고 더 좋은 원료를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바로 이게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감정 휴리스틱'입니다.

인간은 크게 두 가지 시스템에 의해 정보를 처리합니다. 어떤 대상을 볼 때 '시스템 1'에 의해 직관적으로 판단을 먼저 하고 '시스템 2'가 합리성을 판단하는 것이죠.그런데 '시스템 2'가 '시스템 1'의 판단을 적절하게 체크하지 못할 경우 판단 오류가 발생합니다. 특히 소비자는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생각을 최소화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 판단을 요구하면 자기도 모르게 '시스템 1'이 작동합니다. 이것을 '휴리스틱'이라고 합니다. 제품을 선택할 때 특정 브랜드를 따지는 고정관념이라든가,어떤 제품이 어느 국가에서 만들어진 것이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식이죠.

사람들이 고급커피를 고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란 표현과 통하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 대해 확률 판단을 할 경우나 여러 가지 판단을 해야 할 경우 기분이나 감성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감정 휴리스틱'이라고 합니다.

제품 광고에서도 소비자들의 감성 휴리스틱을 자극하기 위한 수식어들을 많이 씁니다. 새로움을 강조하는 '뉴(new)'라든가,자연적인 느낌을 주는 '내추럴(natural)',남다른 가치를 지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프리미엄(premium)'이나 '골드(gold)'를 붙이기도 하죠.이런 용어들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제품에 대한 일반적 판단을 넘어 좀 더 긍정적인 감정을 받도록 유도하는 작용을 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판단하는 것처럼 감정 휴리스틱이 사람들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번 살펴보죠.여기 항아리 두 개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에게 항아리 속에서 빨간 공을 집으면 선물을 준다고 한 뒤 두 개의 항아리를 보여줍니다. 항아리 A에는 빨간 공이 10개 중 1개가 들어있고,항아리 B에는 100개 중 8개의 빨간 공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느 항아리를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8개의 빨간 공이 들어 있는 항아리 B를 선택합니다.

확률적으로 본다면 판단 오류가 되죠.10개 중 1개가 들어 있으면 확률적으로 10%가 되고,100개 중 8개가 있으면 확률적으로 8%가 됩니다. 확률적 판단을 정확하게 한다면 항아리 A를 선택해야 함에도 굳이 항아리 B를 선택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10%와 8%로 판단을 하지 않고,빨간 공 1개와 빨간 공 8개로 판단을 한다는 뜻입니다. '이왕이면 1개보다는 8개가 더 확률이 많지 않을까'하는 감정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기 때문입니다.

감정적 반응은 제일 눈에 띄는 자료에 의해 가장 빨리 나타나기 때문에,확률적으로는 적지만 기분상으로는 좋은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업이 브랜드 포지셔닝을 할 때도 감정 휴리스틱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좀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은행은 다른 은행보다 한 시간 빠르게 온라인 서비스를 실시합니다. 이 서비스의 홍보 슬로건은 '당신은 좀 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You've got the power)'였습니다. 한 시간 빠른 온라인 서비스가 실제로 큰 힘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소비자들은 그 문구를 보면서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SBS 8시 뉴스'도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정규 뉴스는 당연히 오후 9시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8시에 한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 의구심을 갖던 사람들이 '한 시간 빠른 뉴스'라는 광고를 보고 나서는 수긍하게 됩니다. 8시 뉴스는 어쩐지 다른 사람보다 내가 한 시간 더 빨리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고,그래서 남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거죠.'SBS 8시 뉴스'는 한 시간 빠른 뉴스로 브랜드 포지셔닝을 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가격 전략에 있어서도 감정 휴리스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 물가가 몇 % 올랐다'는 것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데,막상 점포에 가서 물건을 살 때 '650원에서 700원으로 올랐다'고 하면 느낌이 확 와 닿습니다. 이것을 '몇 % 올랐다'고 하면 역시 감이 잘 오지 않겠죠.그렇기 때문에 가격을 할인할 때 금액으로 표시를 해주면 소비자들이 프로모션에 의해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기업의 브랜드 포지셔닝과 가격 전략에 감정 휴리스틱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소비자의 심리를 읽는 앞선 기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리=이주영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ope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