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산골짜기 간이역인 '별어곡' 뒤편에 작은 아파트가 세워졌더라고요. 주변 풍경이 무너진거죠.아마도 지금 (우리가) 찍어놓은 사진이 몇년 뒤면 전부 기록사진이 될 겁니다. "

신작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문학과지성 펴냄)를 낸 소설가 임철우씨(56 · 한신대 교수 · 사진)는 작품의 소재가 된 '별어곡(別於谷)' 역의 풍경이 변한 데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작가는 7~8년 전 강원도 횡성에 작업실을 마련한 뒤 쉬는 날이면 산골짜기를 돌아다니다가 '별어곡(別於谷)'역을 발견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최근 다시 찾아보니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임씨는 "서울과 동해,정선과 증산으로 향하는 네 갈래 길이 만나는 강원도 어느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던 이 역은 2005년 무인(無人) 간이역으로 격하됐다가 작년 8월에 리모델링을 거쳐 '민둥산 억새전시관'으로 바뀌었다"며 "외관에 새 페인트칠을 했고 주변에는 아파트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정선과 영월쪽에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간이역과 무인역이 많다"며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역이 폐기처분되는 게 너무나 빠르고 쉽게 사라지는 현대인의 삶이나 기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고 작품을 쓰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소설은 아픈 과거를 안고 별어곡역 인근에서 살아가는 네 인물의 인생을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엮었다. 이 역의 마지막 역무원인 정동수는 철도청 사보 독자 투고란에 시를 기고하는 청년이다.

늙은 역무원 신태묵은 과거 자신의 실수로 열차 플랫폼에서 죽은 남자의 아내와 결혼한 후 과거가 알려질까봐 늘 불안에 휩싸인다. 열여섯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70대의 '가방 할머니'(순례)는 치매에 걸려 매일 가방을 들고 역을 찾아온다. 역 맞은 편에 있는 제과점의 여자는 어린 시절 우연히 산에서 만났던 탈영병의 편지를 간직한 채 그의 자살로 괴로워한다.

작가는 "격동의 역사에서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며 "특히 위안부 문제처럼 몇 백년도 아닌 불과 몇 십년 전 일들이 쉽게 잊혀져 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