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경기부양] 돈 쏟아부어 '엔高ㆍ디플레' 두 토끼 잡기… 시장 반응은 '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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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銀ㆍ정부 모처럼 긴박
기준금리 0.1%에서 동결
장기국채 매입 확대 안 해
"예상한 수준 못 벗어나"
기준금리 0.1%에서 동결
장기국채 매입 확대 안 해
"예상한 수준 못 벗어나"
지난주 미국에 출장갔던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 方 明) 일본은행 총재는 일정을 하루 단축해 29일 밤 귀국했다. 그는 공항에서 집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전화로 다음 날 오전 9시 임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소집했다. 이때부터 일본은행과 정부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간 나오토 총리도 30일 오전 정부의 경기부양책을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발표할 것을 지시했다.
이로써 30일 하루 동안 일본은행은 오전 중 초저금리 자금공급 확대를, 정부는 오후에 소비 진작 · 고용 확대를 위한 대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엔화 급등과 주가 폭락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모처럼 기민하게 움직인 하루였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담담했다. 대책 내용이 모두 예상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 단독으론 '달러 약세 · 엔화 강세'라는 대세를 뒤집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였다.
◆엔고(高) 저지 · 내수 자극이 핵심
현재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핵심 문제는 엔고와 디플레이션(경기침체로 인한 물가 하락)이다. 엔고는 수출의 발목을 잡고,디플레는 내수를 망가뜨린다. 그 결과로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다. 일본은행의 초저금리 자금공급 확대는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려는 다목적용이다.
일본은행의 이번 조치는 한마디로 은행 등 금융회사에 거의 공짜(연 0.1%)로 돈을 빌려줘 기업이나 개인에게 대출을 늘리도록 한 것이다. 시중에 돈을 풀어 기업 투자와 개인 소비심리를 자극하겠다는 의도다. 시장에 엔화자금이 늘어나면 달러에 대한 엔화가치가 떨어지는 효과도 있다. 엔고 억제,디플레 완화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내수 진작에 초점을 맞췄다. 친환경 가전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에코포인트제를 연장 실시하고,기업들의 환경 관련 설비투자와 기술 개발에 세제지원을 늘리기로 한 것이 그렇다. 보육시설 확충, 신규 졸업자 인턴십 지원도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면서 동시에 내수침체를 타개하려는 방안들이다.
◆시장 '역시나…' 담담한 반응
30일 오전 9시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가 시작되자 엔화가치는 달러당 85.90엔까지 떨어졌다. 지난 주말에 비해 달러당 1.5엔 이상 낮았다. 도쿄증시의 닛케이평균주가도 오전 한때 지난 주말보다 300엔 가까이 높은 9280엔까지 뛰었다. 일본은행의 대책에 부푼 기대감을 보여줬다.
그러나 오후 들어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 결과가 나오자 엔화는 오르고,주가는 하락했다. 회의 결과가 당초 예상 그대로였기 때문.'혹시나'했던 기대감이 '역시나'로 끝난 셈이다.
노무라증권 관계자는 "일부 투자가들은 일본은행이 0.1%인 정책금리를 제로(0)%로 낮추거나,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등의 좀 더 과감한 금융완화책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봤다"며 "그러나 예상대로 초저금리 자금대출 확대에 그치자 주식시장에 실망 매물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등과 공조 없이는 근본적 한계
일본은행과 일본 정부가 공조해 엔고 저지와 내수 진작에 나섰지만 근본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엔화만 해도 일본은행이 시중에 돈을 푼다고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엔화 강세는 엄밀히 얘기해 달러 약세의 결과다. 미국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자 상대적으로 경기가 덜 나쁜 일본 엔화로 돈이 몰린 탓이다. 미국 경제불안이란 근본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엔화 강세는 멈추기 어렵다.
일각에선 일본은행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고 엔화를 파는 직접 개입도 거론한다. 하지만 이것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공조 없이는 별무 효과다. 일본이 단독으로 시장에 개입해 봤자 '밑빠진 독에 물 붓기'다. 하지만 달러 약세로 수출 확대를 노리는 미국 정부가 엔고 저지에 협조할 가능성은 적다.
일본의 내수 침체도 시중에 돈이 부족한 게 원인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개인은 소비를 자제하는 게 배경이다. 돈을 푼다고 살아날 소비와 투자가 아니다. 무토 도시히로 다이와증권 연구소장은 "정부와 일본은행의 경기대책으론 엔고를 방어하고, 내수를 되살리기에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