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내장재를 생산 · 시공하는 중소기업 A사는 노무비와 자재비 지급이 3개월째 밀려 있다. 공급을 맡겼던 중견 건설사 B사가 지난 6월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바람에 납품대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금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는 지금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B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변제 순위가 뒤로 밀렸다. A사 사장은 "노무비는 일부를 지급했지만 현금흐름이 막혀 자재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레미콘 전선 등 2차 납품업체들까지 부실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B사의 다른 하도급업체들도 A사와 비슷한 상황이다.

한 하도급업체 대표는 "법정관리 직전 받은 어음을 제1금융권에서 외면하다 보니 원가도 안 되는 수준에서 제2금융권에서 할인받고 있다"며 "당장 현금이 없어 수익성은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건설부문 중기 부도,지난해의 2배 수준

중소기업들이 최근 들어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된 데는 △대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연쇄 부실 △원자재 가격 상승 속 납품단가 인하 압력 △보증 비율 축소와 패스트트랙 만기 도래 등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축소 등이 겹친 데 따른 결과다.

특히 부실 채권 증가는 건설 관련 납품업체와 내수 부문 3,4차 납품업체에 집중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올 6월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 65개 업체의 어음은 사실상 제1금융권에선 할인이 중단돼 수백여 중소기업이 도산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건설 부문 하도급 기업이다.

김상복 전국경영자협의회연합회 회장은 "수출 비중이 높은 정보기술(IT) 자동차 플랜트 분야 중소기업들의 수익성이 개선된 데 비해 이들 업체는 전방산업의 기반의 무너지면서 부실이 깊어지는 양상"이라며 "회원사들은 '금융위기 이후 올해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전선 생산업체 대표는 "관련 대기업은 물론 주요 발주처인 공기업까지 긴축경영에 돌입하면서 최근엔 발주 물량 자체를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지난 29일 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지만 경기가 너무 불투명해 업황 턴어라운드를 기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전문건설업체 부도 추이는 6월 10곳,7월 14곳,8월 16곳 등 매월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건설협회 관계자는 "올해 5월 이후 부도 업체가 57곳에 이른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지난해 같은 기간 32곳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수기업,소기업 어려움 증폭

본격화하고 있는 금융권의 중소기업 구조조정과 출구전략도 부담이다. 채권은행들은 10월 말까지 부실 중소기업을 분류해 구조조정에 들어갈 계획이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연체 경험 등 비재무적 측면까지 평가 항목에 넣는 등 기준이 한층 강화돼 벌써부터 어느 회사가 '살생부'에 들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관계자는 "보증기관들의 보증 비율 축소와 패스트트랙 종료,총액한도 대출 규모 축소 등이 맞물리면서 중소기업의 퇴출이 하반기에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며"은행들이 중소기업 구조조정 대상을 다음 달께 확정할 예정이어서 당분간 부실 채권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부실 채권이 증가하면서 연초 반짝 회복세를 보였던 중소기업 가동률도 주춤하고 있다. 30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7월 중소기업 가동률은 72.4%로 전월 대비 0.3% 하락했다. 4월 72.8%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5월과 6월에는 72.7%로 주춤했고 7월에는 내림세로 돌아선 것이다.

기업 규모별로는 혁신형 중소기업의 가동률이 전월 대비 증가세를 보인 데 반해 일반 제조기업은 하락세를 나타냈으며 기업 규모별로는 중기업의 가동률이 오른 반면 소기업은 떨어졌다. 수출기업보다는 내수기업이,중기업보다는 소기업이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고경봉/남윤선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