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거부하는 고집 있는 중형차 평가"

일본 후지중공업의 자동차 제조사 스바루는 국내에서 낯선 브랜드다. 한국시장에는 주력 모델인 레거시와 아웃백, 포레스터 등 3가지 라인업이 불과 4개월 전부터 선보였다. 도요타 캠리나 혼다 어코드는 알아도 레거시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거시의 첫 인상은 단단하고 튼튼하다는 느낌이다. 우드 및 메탈그레인이 실내 인테리어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시트에 앉아 실내를 둘러보니 구석구석 트렌드를 거부하는 고집스러움이 묻어난다.

우선 엔진 시동은 요즘 유행이 된 버트시동 스마트키가 아닌 열쇠형 키로 건다. 운전석 클러스터는 심플함이 두드러지고 직선을 강조한 센터페시아 라인은 조작 버튼이 몇 개 없다. 최신형 모델처럼 감각적인 디자인이나 세련된 치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화려함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보단 중후한 멋을 찾고자 하는 중년 남성들이 선호할만한 기호를 두루 갖췄다. 레거시는 이처럼 전통적인 세단 타입에 충실하다.

◆고속 코너링의 강자···주행 안정감 뛰어나

시승차는 3600cc 5세대 레거시. 시동을 걸고 서울 바깥 시외를 달려보니 일본차 특유의 정숙함이 느껴진다. 엔진 및 주행 소음은 크게 들리지 않는다. 도심 외곽도로 고속주행에서도 차내 음악소리를 방해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레거시는 겉모습보단 주행 성능에서 강한 매력을 발산하는 차다. 구리에서 양평 방향으로 이어지는 편도 1차선 국도에서도 시속 100km 이상 가속은 부드럽게 치고 달린다. 6기통 DOHC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260마력, 최대토크 34.2kg·m을 실현한 동력성능은 중저속 RPM 영역에서도 높은 토크의 힘을 보여준다.

스바루가 자랑하는 수평대향형 박서엔진과 4륜구동 방식은 특히 고속주행 시 코너링에서 더욱 안정감을 보여준다.

이 차의 서스펜션은 전륜에는 맥퍼슨 스트럿 방식을, 후륜에는 더블위시본을 채택했다. 너무 무르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적당히 부드러운 승차감이 몸에 와 닿는다.

◆각진 센터페시아 라인··· 남성적 이미지 강해

과연 레거시를 여성 운전자들도 선호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니 조금은 의문이 든다. 외관 디자인뿐 아니라 기어 변속 장치는 직선적인 날카로움이 강해 남성 타입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는 레거시의 구매 계층을 다소 좁힐 수 있는 이유 중 하나.

하지만 이 차의 단단한 멋을 느껴 본 스바루 마니아들은 레거시의 매력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시승 내내 레거시 3.6은 힘 좋고 안정성도 탁월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레거시는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의 안전도 테스트에서 '2010 가장 안전한 중형 세단'에 선정되기도 했다.

레거시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3만대 이상 팔렸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2.5 및 3.6 모델이 3개월간 100대를 넘기지 못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경쟁 차종들보다 가격이 다소 높다는 게 중론이다. 직접 시승한 모델의 가격은 4190만원. 어코드 3.5(4090만원)나 알티마 3.5(3690만원)보다 100만~500만원가량 비싸다.

눈으로 보이는 수치상 가격은 경쟁차종보다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차를 몸소 체험하고 나니 그리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레거시의 고집은 가격부터 잘 말해준다.

한경닷컴 김정훈 기자 lenn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