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창의 경영] (15) '제3의 공간' 읽고 서비스 디자인 비법 터득했죠
책을 배경으로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내려간 지하 도서관.4000여권의 책이 종류별로 서가에 가지런히 꽂혀 있고,서가 사이에는 기다란 책상과 의자들이 놓여 있다. 책상 앞에 앉으니 번다한 일상에서 벗어나 금세 책 속에 푹 파묻힌 느낌이다. 서가 앞쪽에는 작은 원탁들과 푹신한 의자를 갖춘 휴식공간도 있다.

파라다이스그룹이 지난해 4월 본사 지하 1층에 입주해 있던 업체가 나간 자리에 마련한 '작은 도서관'이다. 교보문고에서 400권,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소설가 김주영씨가 600권을 기증했고 임직원들도 손때 묻은 소장 도서를 내놓았다. 또 매달 임직원이 보고 싶은 책의 목록을 적어내면 회사에서 책을 구입해 도서관에 갖다 놓는다.

"지난 5월 우리 그룹은 2012년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무한 상상력의 창조기업'을 지향한다는 '파라다이스 웨이'를 선포했습니다. 전문가와 우리 임직원들이 2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것인데 그걸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꾸자'입니다.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는 창의적 상상력으로 예술과 과학을 아우르는 경영을 디자인해 보다 높은 삶의 질과 행복한 미래를 창조하자는 것이죠.그런데 바꾸고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만들어서 가지고 있던 것을 비우고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채워야 합니다. 《창조경영-한국기업 생존의 열쇠》(이코북)나 《창조적 전환》(한국경제신문) 등을 보면 '과거와의 이별'에서 창조적 발상이 시작된다고 하거든요. 결국 창조적 발상은 동서고금의 고전부터 현대의 첨단 경영이론까지 책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지요. "

윤성태 파라다이스 부회장의 설명이다. 윤 부회장은 대통령 정무비서관,옛 보건사회부 차관,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등을 거쳐 2008년 3월 파라다이스그룹에 합류했다. 윤 부회장은 2008년 하반기부터 전필립 회장과 함께 독서경영을 구상하고 추진했다.

파라다이스의 독서경영은 김 문화재단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독서위원회가 주도한다. 위원회가 분기별로 책을 추천하면 직원들은 이를 읽고 독후감을 내고 토론하며 업무에 적용할 아이디어도 만들어낸다. 2008년 연말에는 독후감 경진대회를 열어 우수작을 낸 2개팀은 마카오로 3박4일간의 포상여행을 보내줬다.

또 지난해 1월에는 한 달여 동안 전 계열사를 순회하며 저자 초청 독서강연회를 열어 책을 읽는 즐거움과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본사에 만든 '작은 도서관' 외에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도 20여평 규모의 도서관을 만들었고,지난달 24일부터 투숙객을 위해 호텔 2층에 350여권의 책을 전시하는 '휴(休)북카페'도 열었다.

"이번 여름에는 회장님이 직원들에게 르네상스에서 읽는 창조경영의 10가지 법칙을 담은 《르네상스 창조경영》(21세기북스)을 비롯한 르네상스 관련서 4권을 선물했어요. 연말 독후감 경진대회에서 입상한 팀에는 해외여행지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할 방침인데 《로마인 이야기》의 독후감으로 입상하면 책에 나오는 로마 관련 유적지를 찾아가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은 직원이 화성에 보내달라고 하면 좀 난감하겠지만요. 하하."

올해 독후감 경진대회는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계열사별로 2개팀씩 선정해 이들을 한자리에 초청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한 뒤 최종 입상자를 고른다는 것.또 매달 한 번씩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코딩 데이(coding day)'를 만들어 '파라다이스 웨이'의 전파와 실행 방안을 토론할 방침이다. 생일을 맞은 직원을 위한 파티를 열고 화제의 공연 · 전시장이나 기업도 탐방할 예정이다. 코딩 데이 행사의 하나로 '리더스 포럼'을 열어 독서토론과 저자 초청강연을 연다. 첫 '코딩 데이'가 1일이다.

"독서경영을 한 이후로 직원들 간의 대화와 소통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전에는 퇴근 후 술자리에서나 만나던 사람들이 책을 매개로 토론하다 보니 일상적인 업무의 애로사항이나 새로운 방안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이죠.실제로 업무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경영진으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죠."

윤 부회장은 "그동안 해온 독서캠페인을 확대 발전시킨 것이 '파라다이스 웨이'라 할 수 있으므로 독서는 '파라다이스 웨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카지노 · 호텔 · 여행 등 서비스산업이 주력 업종인 그룹 특성상 '미적 감각'이 더욱 중요하다며 감성경영 · 디자인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카지노 · 호텔 · 면세점 등을 어떻게 고객친화적으로 가꿀 것인가가 중요한데 단순히 인테리어와 같은 하드웨어를 새롭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자체를 어떻게 디자인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고객에게 환경친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워커힐 카지노의 '월드 베스트 카지노(WBC:World Best Casino)'가 그런 사례예요. '삶을 예술처럼,예술은 삶으로 디자인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모든 고객의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자는 것인데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크리스티안 미쿤다의 《제3의 공간》(미래의창)을 많이 참고했지요. "

매일 새벽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윤 부회장은 출애굽기를 예로 들며 비전에 대한 조직 구성원들의 합의와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430년이나 살던 애굽(이집트)을 버리고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인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믿고 40년이나 걸려서 찾아간 이야기는 버리고 비우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서 도전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한국경제·교보문고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