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안다(天知地知子知我知).중국 후한(後漢) 때의 관리 양진이 한밤에 금덩어리를 갖고 찾아온 사람의 청을 뿌리치며 한 말이다. 밤이라 아무도 모를테니 받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훗날 양진은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환관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모함을 받게 되자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우리나라에도 양진 못지 않게 청빈한 공무원이 적지 않았다. 조선 영조 때 호조 서리였던 김수팽이 대표적이다. 역시 서리로 일하던 동생 집에 들렀다가 염료로 가득찬 통들을 보고 까닭을 물었다. 동생은 살기가 어려워 아내가 염색으로 살림을 돕고 있다고 답했다. 김수팽은 크게 화를 내며 염료를 모두 쏟아버리고 동생을 꾸짖었다.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백성들의 생업을 빼앗는 건 도리가 아닌데다 장사를 하다 보면 직권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을 게다.

이렇게 공직의 도를 추상처럼 지킨 이들과 달리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탐욕도 탐욕이지만 뇌물과 선물의 구분이 모호한 탓도 있다. 직권을 활용해 편의를 봐달라고 건넨 부정한 금품이나 향응인지,아니면 단순한 호감의 표시인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이렇다 보니 촌지 떡값 전별금처럼 희한한 용어까지 생겼다. 하긴 뇌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 'bribe'는 중세까지 선물의 의미로도 쓰였다고 한다.

공무원이 받은 뇌물을 며칠 후 돌려줬더라도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란 판결이 나왔다. 창원지법은 모 국립대의 전 병원장이 직원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뒤 8일이 지나서 돌려준 것을 징계사유로 인정했다고 한다. 비록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일부 참모들에게 알렸지만 즉시 반환하지 않은 것은 비리에 해당한다는 판결이다. 당사자는 억울한 측면도 있겠으나 뇌물의 기준은 엄격한 게 당연하다.

혹 뇌물과 선물의 구분이 어려우면 한국고용정보원의 윤리경영 가이드북을 참고할 만하다. '밤에 잠이 잘 오면 선물이고 그렇지않으면 뇌물이다. 현재의 자리를 옮겨서도 받을 수 있는 것이면 선물이고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받으면 뇌물이다….' 뭐든 받아서 마음이 편치 않으면 피하는 게 상책이란 얘기다. 앞으로 공직자 재산 공개 검증을 더 엄밀하게 한다니 우리 마음 속의 도덕 기준도 한층 가다듬을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