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에서는 계약 파기 ·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가해자의 책임을 제한하는 내용의 판결들이 나왔다. 대법원은 여러 차례에 걸쳐 맺은 계약을 계속 불이행했을 때 마지막 계약을 기준으로 피해액을 따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 계약이 지켜지지 않았는데도 새 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난 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했거나 새 계약으로 '과거' 정산을 끝마쳤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또 계약파기를 당한 쪽도 손해뿐 아니라 이익을 볼 수 있는 만큼 이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세 번의 계약

H사는 J사와 2001년 온돌마루판 독점 공급 · 판매 1차 계약을 맺었다. J사가 온돌마루판을 독점 납품하는 대신 H사는 이를 독점 판매할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두 회사는 연간 최소 구매수량 등 몇몇 조건을 수정하는 2,3차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기도 했다. 그런데 2007년 J사는 "계약기간 동안 구매하기로 한 최소 수량만큼 H사가 구입해 주지 않았다"며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J사는 H사가 1,2차 계약기간에 최소 구매보장 수량보다 적게 구입한 부분에 대해서도 손해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H사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으나,J사가 3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1,2차 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기했거나 새 계약에 이를 반영해 정산했다고 본 원심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원심은 3차 계약을 기준으로 최소 구매수량의 부족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H사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 계약파기'피해자'의 이익도 고려

렌털업체 R사는 웹사이트 제작사 T사와 2008년 사이트 제작 용역계약을 했다. 그런데 이후 협의 과정에서 R사의 추가적인 요구와 T사의 의견이 맞지 않자 R사는 전화로 계약해지를 통보한 후 통지서를 발송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를 상대로 계약파기(계약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2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계약금 등 약정된 용역대가 전액을 기준으로 손해배상금을 산정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고 31일 밝혔다. 계약 파기로 피해자가 전체적으로는 손해를 봤다 해도,일부 이익을 본 부분이 있는지까지 따져 상계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계약 파기로 T사가 용역대가를 받지 못했지만 역시 용역을 제공했어야 할 의무도 사라지는 이익이 생겼다"며 이를 감안해 손해배상액을 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계약 불이행에 따른 손해액은 계약이 이행됐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약정된 용역대가)과 동일하다"며 T사의 손해액을 당초 계약금 3000만원이라고 봤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