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사장 동원 '사옥매각→해외투자' 290억 빼돌려
1991년 설립된 1세대 벤처기업 핸디소프트가 최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공모한 횡령으로 상장폐지 문턱까지 몰렸다. 핸디소프트는 31일 윤문섭 전 대표이사가 290억원(자기자본 대비 69.8%)에 달하는 회삿돈 횡령에 관여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검찰이 최근 주목하는 횡령 '몸통'과 '바지사장'에 의한 전형적인 수법이란 지적이다.

◆'바지사장' 3명 뒤에 숨은 '몸통'

작년 4월 이상필씨가 핸디소프트를 인수한 뒤부터 올 7월 말까지 핸디소프트의 경영을 맡은 윤씨는 '행동대장' 역할을 하며 회삿돈을 빼돌렸다. 이씨는 윤씨 등 '바지사장'을 앞세워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

이씨는 작년 4월21일 동양홀딩스라는 투자회사를 앞세워 핸디소프트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인수자금 120억원은 이씨가 댔지만 대표이사로는 윤씨를 내세웠다. 다음은 윤씨의 차례였다. 작년 6월1일 대표이사가 된 윤씨는 한 달 만에 서울 역삼동 사옥을 팔아 현금 415억원을 확보했다. 횡령을 위한 재원을 마련한 셈이다.

횡령 금액을 회수하는 데 이씨는 동생을 동원했다. 몽골 구리광산개발회사인 MKMN을 단돈 100만원에 인수해 동생인 이상요씨를 사장으로 앉힌 것이다. 검찰 수사결과 MKMN이 탐사권은 있지만 채굴권은 없어 수익을 낼 수 없는 껍데기 회사로 밝혀졌다. 윤씨는 작년 8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핸디소프트의 사내유보금 290억원을 들여 MKMN 지분 51%를 취득했다. 이 돈은 고스란히 전주(錢主)인 이씨에게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윤씨는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자원개발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됐다"고 대대적으로 선전,발표 다음 날(8월19일) 핸디소프트 주가가 상한가로 치솟기도 했다. 핸디소프트는 8월 초 이씨의 횡령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올라 있다.

◆담당 회계법인도 횡령 몰라

회사 인수에서 횡령까지 바지사장이 동원돼 소액주주들은 물론 직원들까지 이씨의 존재를 몰랐다. 담당 회계법인(다인회계법인)도 거액 횡령 이후임에도 2009 회계연도 사업보고서에 감사의견 '적정'을 제시했다. 횡령이 해외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감사에서 제대로 가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 했던 이씨는 검찰 수사에서 덜미가 잡혔다. 자신이 실제 주인인 이베이홀딩스를 통해 인수한 코스닥기업 인네트에서도 MKMN을 통해 20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발각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씨는 법적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앉힌 바지사장보다 먼저 지난 7월 초 검찰에 구속 · 기소됐다. 이씨가 구속된 뒤에도 윤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상반기에 적절한 투자를 통해 성과를 거뒀으며 하반기에도 적극적인 경영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공언하다 7월29일 구속됐다.

김상효 소액주주모임 대표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부동산을 팔아 723억원의 현금이 회사에 들어왔지만 단기차입금 상환 등 불분명한 목적으로 빠져나갔다"며 "실제 이씨의 횡령금액은 500억~6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경목/임도원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