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더블딥(경기 일시 회복 후 재침체)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그동안 강한 회복세를 이어온 한국 경제도 상승 탄력이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산업생산은 1년 넘게 전년 동월 대비 증가했으나 증가율은 최근 몇 달 새 확연히 낮아졌다. 앞으로의 경기 흐름을 예고하는 선행지수 전년 동월비는 7개월 연속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을 골자로 한 출구전략 시행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광공업 생산 증가율 9개월 만에 최저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7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국내 경제는 외견상 꾸준한 회복세를 보였다. 광공업 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15.5% 증가해 13개월 연속 증가했다. 전월 대비로도 1.1% 증가,9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84.8%로 전월보다 0.9%포인트 상승,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개별 지표의 추이를 살펴보면 회복세가 둔화되는 조짐이 나타난다. 광공업 생산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5월 21.7%에서 6월 17.1%,7월 15.5%로 매달 낮아지고 있다.

7월 광공업 생산 증가율은 지난해 10월(0.2%)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서비스업 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3.4% 늘어 증가율이 전달의 4.7%보다 낮아졌다. 전월 대비로는 1.0% 줄었다. 설비투자와 건설기성(공사실적) 역시 전월에 비해 각각 3.1%와 3.2% 감소했다.

앞으로는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경기 회복세가 더욱 약해질 수 있다. 상반기까지는 지난해 상반기 경제 상황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반등 폭이 크게 나타났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제조업 가동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긍정적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제조업 가동률은 생산능력 대비 생산량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가동률이 높아진 것은 생산이 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간 설비투자가 부진했던 탓에 분모인 생산능력이 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윤석은 통계청 경제통계기획과장은 "공장 가동률 상승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생산 증가라기보다는 설비투자 정체"라고 말했다.


◆경기정점 가까워진 조짐 보여

무엇보다도 불안감을 갖게 하는 것은 미래 경기를 예고하는 선행지수 전년 동월비의 하락세다. 7월 선행지수 전년 동월비는 6.7%로 전달보다 0.4%포인트 하락했다. 선행지수 전년 동월비는 지난 1월 하락세로 돌아선 이후 7개월째 떨어졌다.

통계청은 일반적으로 선행지수 전년 동월비가 2개월 연속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방향이 바뀐 시점을 국면 전환의 신호가 나타난 시점으로 본다. 또 이 시점으로부터 8~9개월 후에 국면 전환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해석 방법에 따르면 국내 경기는 지난 1월 국면 전환의 신호가 나타났으며 9~10월께 둔화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월보다 0.5포인트 상승하면서 17개월 연속 오름세를 지속했지만 이 역시 9~10월께에는 하락세로 돌아설 수 있다는 의미다.

송태정 우리금융 경영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은 "선행지수 하락세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 경기 정점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며 "2008년 말과 같은 큰 충격이 나타나진 않겠지만 상반기와 같은 빠른 회복세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연말로 갈수록 수출 주문 줄어들 듯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아직은 선진국 경기 둔화의 영향이 국내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 수요 감소가 수출 주문 감소로 이어지는 시차를 감안하면 연말로 갈수록 국내 경기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와 마찬가지로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상무)은 "코스피지수의 추가 상승이 막히고 금리가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 지표는 이미 대외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며 "미국 경기 회복세가 둔화되면 국내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이어서 수출 등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외 불안 요인이 확산되면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기보다는 현 수준을 유지하면서 경기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송 연구위원은 "대외 불확실성이 크고 한국 경제 성장률도 상반기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기준금리를 올리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며 "연말까지는 국내외 경제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 상무도 "경기 회복세가 취약 계층으로 미처 확산되기 전에 다시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며 "취약 부문의 체감 경기가 개선될 때까지는 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국신 한국경제학회장(중앙대 경제학과 교수)은 "한국이 중국 등 개발도상국과 교역규모가 커 선진국의 영향을 덜 받아 왔다"면서도 "그러나 시차를 두고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출구전략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