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적 사건"..직지 위상 흔들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이 앞선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인 '증도가자(證道歌字)'(가칭)가 발견됐다는 서지학자 남권희 경북대 교수의 주장은 사실로 확인되거나 적어도 학계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획득한다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사건'이다.

언론계에서 흔히 쓰는 '국사교과서가 바뀐다'는 사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번 주장은 단순히 특정한 학자 한 사람의 의견 개진에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간단히 넘기기에는 우선 그것을 주장한 연구자의 역량이 만만치 않다.

일부 비판적 시각이 없지는 않지만, 남 교수는 서지학 분야 중진 중에서 현재 가장 권위 있는 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만약 그의 주장이 타당성을 얻는다면 정말 국사교과서가 바뀐다.

당장 직지는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물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을 잃게 된다.

물론 직지는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이기에 '증도가자'가 세계 최고 금속활자로 공인된다고 해도 여전히 현존 최고 금속활자본이다.

하지만 책을 찍어내던 금속활자 자체가 발견됐다고 하면 이런 금속활자보다 138년 이상이나 흐른 뒤에 그와 같은 금속활자로 찍어낸 인쇄물이 예전과 같은 위광을 누리기는 힘들 것이다.

대대적인 직지 활자 찾기 활동을 벌이는 청주고인쇄박물관만 해도 김이 빠질 수 밖에 없다.

1일 남 교수의 주장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직지를 심벌로 내세우는 청주에서 "남 교수 주장은 정말로 믿을 수 있는 건가? 진짜 증도가를 만드는 데 찍었다는 금속활자가 맞다면 우리 직지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식으로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 교수가 주장하는 '증도가자'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실제 직지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그러나 증도가자가 됐건 직지가 됐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한 민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이 점은 오히려 한층 더 강화된다.

직지만 해도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42행 성경'을 금속활자로 찍어내기보다 무려 78년을 앞선 1377년에 나왔다.

물론 세계 문명 발달에 미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역사가 훨씬 오래된 우리의 활자는 구텐베르크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구텐베르크는 그야말로 세계 문명의 흐름을 뒤바꿨지만 우리의 금속활자는 국내, 혹은 동아시아에 국한된 측면이 있다.

이는 실제 서구 중심 역사가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아시아를 세계사의 주축으로 놓으면 이 지역 문명이 세계의 주류가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금속활자 발명은 분명히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남 교수 주장이 타당하다면 세계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우리 선조가 세운 셈이 된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