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없이 협상이 타결돼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무파업 협상타결로 2000만원 가까운 돈도 받게 됐습니다. 회사도,노조도 좋은 것 아닌가요. "

기아자동차 노조가 20년 만에 분규 없이 임단협 협상에 합의한 다음날인 1일 기아차 소하 공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무파업 타결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매년 연례행사처럼 벌이던 파업이 없어져 좀 허전한 감이 든다"며 "하지만 이렇게 서로 좋게 끝나니 마음이 이상하게 들뜨고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비슷한 반응은 사측에서도 나왔다. "지난해 노조 파업으로 1조원(6만대)대의 생산차질이 발생했는데 올해는 0원이 될 것"이라는 게 사측의 분석이다.

노동 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노동계의 대표적 강성노조인 기아차가 현대자동차에 이어 무파업으로 협상을 타결지으면서 산업현장에 이 같은 진단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강성노조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기아차 노조가 온건실리노선의 현대차 노조를 뒤따르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해석이다. 파업에 따른 현대 · 기아차 노조의 근로손실일수가 국내 전체 노조의 30~40%를 차지했던 점을 감안하면 큰 변화라는 진단이 노동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산업현장 내부를 들여다 보면 노조의 정치투쟁과 이념투쟁이 크게 줄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노동 현장에 심심찮게 등장했던 쇠파이프와 화염병은 자취를 감췄다. 파업 건수는 올 들어 7월 말까지 13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8건보다 다소 많지만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8월30일 현재 34만5071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4만577일보다 21.7%나 감소했다.

현대차 노조는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 봄 금속노조가 실시한 '타임오프제 도입 반대'를 위한 파업찬반투표에서 현대차 조합원들은 38%만 파업에 찬성했다. 타임오프 때문에 파업에 들어갈 수 없다는 조합원의 뜻이 표출된 결과였다. 현대차 노조가 참여하지 않은 금속노조의 연대파업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끝났고 타임오프제도는 큰 저항 없이 현장에 속속 도입됐다. 인천지하철 KT 쌍용차 등 한때 강경투쟁을 벌였던 노조들은 투쟁성이 강한 민주노총에서 벗어났다. 민주노총의 강성 노동운동에 싫증을 느낀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런 흐름은 무엇보다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일반조합원들의 인식이 달라진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노조 간부들을 중심으로 한 '그들만의 노동운동'은 일선 조합원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이 없었다. 조합원들의 근로 조건과 상관없는 불법 정치파업이나 격렬한 투쟁은 조합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았다. 대신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한 실리 위주의 노동운동이 관심거리다.

기아차 노조는 이번 무분규 타결로 적지 않은 실리를 얻었다. 기아차노조는 직원 1인당 2000만원 가까운 보수를 받는다. 2년 연속 무파업을 기록한 현대차도 기아차와 비슷한 수준의 수입을 챙겼다.

16년째 무파업을 이어오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도 올해 기본급 인상과 타결격려금,주식 등을 합쳐 1900만원대에 달할 것으로 조선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회사 측은 노조에 주는 비용보다 파업에 따른 손실이 적어 득이 된다는 입장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1987년 민주화바람과 함께 노동운동이 본격화된 지 23년 만에 이념투쟁 정치투쟁에서 벗어나 실리주의 노동운동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이 완전히 안정을 찾았는지는 내년 7월1일 이후에나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복수노조 허용으로 노조설립이 많아지면 노사 관계가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