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최고위층을 움직여 조만간 발주될 8000억원짜리 석유정제설비 공사를 수주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공사를 따내면 얼마를 수수료로 주시겠습니까. "

국내 대형 건설업체인 G사의 P 해외 수주팀장은 최근 이런 전화와 메일에 시달린다. 그는 "예전에도 해외 공사 브로커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3~4배 증가한 것 같다"며 "한 달에 20~30건씩 연락이 와 귀찮을 정도"라고 말했다.

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해외수주 붐을 타고 브로커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브로커들은 주로 "중동과 동남아 지역 왕족이나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끈끈한 관계여서 수천억원대 공사수주를 도와줄 수 있다"며 건설사들을 현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브로커들은 현지 사정에 밝은 교민을 들러리로 내세운다고 한다. 브로커들의 지시를 받은 들러리는 "(현지)정부가 선거를 치르기 위한 비자금이 필요해 내게 공사를 맡겼는데,시공권을 줄테니 공사비 10%를 뒷돈으로 달라"며 착수금부터 건네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행 중인 공사와 관련해서는 발주처 고위 관계자들의 출신학교,공직경험 등 개인정보를 꾸며내 사실인양 떠벌리며 "호형호제하는 사이인데 추후 물량을 밀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한다.

이들에 대처하는 방법은 해외 건설 경험 유무에 따라 다르다. 국내 대형건설사인 H사 관계자는 "신뢰성이 없어 이들의 면담 요청은 100% 거절한다"고 설명했다. 두 달 전 해외사업팀을 신설한 중견건설사인 C사 관계자는 "현지 사정도 익힐겸 브로커들과 면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국내 주택건설시장 불황 탓에 해외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중견 건설사들이 많다"며 "해외 정보에 어둡고 하루빨리 해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시달리기 때문에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