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폭력투쟁으로 노조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투쟁적 노사관계는 노사 양측에 깊은 상처를 주고 회사는 큰 손실을 입을 뿐입니다. 노사 모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상생의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게 수년간 위원장을 맡으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조민근 연세의료원 노조위원장)

"옛날에는 노조가 상생을 외치면 어용으로 뭇매를 맞았지만 이제는 확 달라진 것 같습니다. 조합에 신세대들이 가입하면서 무조건적인 투쟁은 외면 받습니다. 회사와 노조가 윈윈해서 사원 복지가 잘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시대입니다. "(H노조 위원장)

전국 노동 현장 전반에 상생 협력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한때 극렬투쟁을 벌였던 KT 현대삼호중공업 코오롱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중공업 노조들이 상생의 정신을 바탕으로 임단협을 분규 없이 타결지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 현재 노사협력을 선언한 사업장은 모두 1640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182건보다 38.7%나 늘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치고 산업별 국제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투쟁과 대립의 노사관계로는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노동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생바람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KT 노사는 최근 신노사문화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지속적으로 기업가치를 창출하는 데 적극 협력키로 했다.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한 노조운동의 하나로 선언했다. 과거에 사측이나 강조했을 법한 항구적 노사평화 유지,고용안정 노력,사회적 책임 적극 실천,일자리 창출을 노조가 핵심 정책으로 삼고 있다. 분배 요구 중심에서 탈피,고용과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 노조는 한 차원 높은 노동운동을 펼치고 있다. 회사의 생산성 향상은 물론 공존과 나눔을 생각하는 사회적 책무를 실천하고 있다. 박준수 노조위원장은 "노조도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가꾸기 위해 기업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책무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이제 조합원은 물론 경영진,지역주민,주주 등 이해관계자 전체를 생각하는 노동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LG전자 노조는 투명한 노조운영과 협력사 생산성 혁신지원,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해소,글로벌 공동체를 위한 공헌 등을 강조한다. 투명한 노조운영을 통해 도덕성을 높이는 동시에 협력사와의 공존을 위해 함께 노력,대기업 노조로서의 책무를 실천하자는 것이다.
◆과격에서 온건실리로

과격투쟁에서 온건노선으로 탈바꿈하는 노조들도 많다. 2006년까지 극렬투쟁을 통해 호남지역 노동운동을 주도해왔던 현대삼호중공업 노조는 2007년 파업 없이 타결한 뒤 올해까지 4년 연속 무분규로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 지역 최대 고용기업인 현대삼호중공업의 무분규 타결은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노사관계 안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민주노총 소속인 두산인프라코어 창원공장은 지난 3월 금속노조를 탈퇴한 데 이어 최근 임 · 단협 위임 및 노사 상생 · 협력 선언식을 개최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창원공장 노조는 올해 기업별 노조로 새롭게 출범하며 4년 연속 무파업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제3의 노동운동 등장도 달라진 노동 현장을 대변하고 있다. 기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모두 거부하는 새 노동운동이다. 이들의 코드는 바로 상생.현대중공업과 서울지하철노조 등 전국 60여개 노조 10만여명의 조합원을 중심으로 조직된 새희망 노동연대가 변화의 중심에 있다. 이들은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기존의 운동방식을 거부하고 상생의 노동운동을 표방한다. 현대중공업,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서울시공무원노조,전국공무원노조총연맹,행정부공무원노조연맹,전국교육청공무원노조연맹이 대표적인 세력이다.

노동연대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노동운동 △투쟁보다는 정책 · 공익노조 지향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노조로 거듭날 것 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정연수 새희망연대 공동의장(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은 "새희망연대는 노동운동의 청렴성을 확보하고 노동자를 섬기면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노동운동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노동계의 투쟁방식에 일대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투쟁만능주의가 가고 보다 합리적인 노동운동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 새희망연대의 등장으로 기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도 새로운 운동방식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