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마천루에 찔려 하늘이 줄줄 새는 멕시코시티와 서울.그 아래에는 보통사람들이 사는 음침한 지하철 터널과 폐쇄된 공원,주택 재개발 지역 등 거대 도시의 그늘이 존재한다. 도시의 후미진 곳에 들어가 하찮은 사물의 변용을 카메라 렌즈로 잡아내는 작가가 있다.

제6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2010 서울미디어시티 · 7일~11월17일)에 참여한 멕시코 미술가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42 · 사진).그는 "멕시코시티의 하찮은 사물을 내보이는 것은 단순한 미감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2003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된 그는 알렉산더 칼더재단과 스미스소니언미술관,베를린DAAD 등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잇달아 참여하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LA,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그는 회화와 사진,미디어 아트,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동 건축'이란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자동 건축'은 화석,철근,비닐봉지 등 도시 주변의 사물들이 버려지거나 재탄생되는 특정 상황을 사진으로 찍은 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뉴미디어아트다.

그의 작품은 단지 사진 작업으로서가 아니라 매체를 통해 이를 알림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 미술가 장 뤽 뮬렌이 2005년 유명 일간지 르몽드와 손잡고 '크로스 미디어 아트'를 시도해 화제를 모은 것에 착안했다.

비엔날레 행사 기간 한국경제신문에 10회에 걸쳐 연재될 이번 지상전의 프로젝트 제목은 '발견된 조각들'.멕시코시티 아후스코 지역에서 발견된 철재빔,화산재,비탈길,부서진 주택 등 다양한 사물을 찍은 신작 10점을 1주일 간격으로 한국경제신문 지면을 통해 보여준다.


"사람들이 사용했거나 버려진 사물을 카메라 렌즈로 담아내지만 그것은 작업의 일부에 불과해요. 사진이 미디어 (신문)를 통해 전달된 뒤 독자들의 반응까지 담아내는 것을 작품의 완성으로 보거든요. "

그는 "세상에서 소외된 것이 응집된 곳이라서 쇠락한 도심 풍경만 찍는다"며 그동안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정치가나 인기 배우,성공한 사람 등 유명인보다 평범하고 하찮은 물건에서 잠재성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내가 아후스코 지역에서 태어날 당시만 해도 그곳은 황무지였습니다. 부모님은 널려있는 화산재,나무,돌 등을 활용해 원시적인 방법으로 집,가구,학교,생필품을 만들더군요. "

세상에는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자연에서 배운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작품을 공산품처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물에 담긴 잠재성을 일깨운다는 생각에서다.

"저는 1950~1960년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화풍인 '아르테 포브르'(arte pauvre · 물감이나 붓을 사용하지 않고 돌,풀,나무 등 자연을 활용한 미술.일명 '가난한 예술')에서 미술적 영감을 받았어요. 물감이나 붓을 사용하지 않고 대상을 그대로 잡아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원시미술이지만 신문이나 방송을 활용하기 때문에 21세기 미술인 셈이죠."

작가는 멕시코시티에서 발견된 조각들이 서울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중시한다. "멕시코시티나 서울이란 도시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도시를 해부하고 싶었고,보이지 않는 내면을 벗겨내고 싶었죠."

그의 데카당스한 배경 속에는 늘 한국의 재개발 지역 같은 이미지가 녹아 있다. 그는 에덴의 동산이 아니라 21세기 문명의 도시 그늘에서 서성거리는 '아담'인 셈이다. 도심에 버려진 사물을 찍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진을 찍다보니 무언가 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 미디어를 활용하기로 작정했다"며 "익숙한 물건들이 화면에 들어가자 험악하고 하찮은 공간들이 서서히 깨어나면서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문인이 신문에 글을 게재하는 것처럼 미술가가 작품을 실어 지상 관람객들의 오감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고 민주적인 소통의 의미까지 일깨워줄 겁니다. "

크루스비예가스 사진 작업은 서울역 앞 서울 스퀘어빌딩의 미디어 캔버스에서 비엔날레 행사 기간 매주 월 · 수 · 금요일 상영된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