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살의 젊은 정치인,영국 재무부 장관 조지 오스본의 행보가 심상찮다. '늙은 나라' 영국의 30대 곳간지기가 취임 후 넉 달 동안 해온 일은 악역의 연속이었다. 여왕의 연봉부터 동결했다. 공무원들에게서 기사 딸린 승용차를 모두 뺏더니 출장 때도 일등석을 금지시켰다. 공공부문 허리띠 죄기에 총리도 동참시켰다. 지난 7월 정상회담차 미국에 갔을 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민항기 영국항공의 2등석을 탔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는 오스본은 최근 공공개혁의 칼을 더 높이 빼들었다. 지난주 재무부 인력 1350명을 4년 내 1000명으로 줄인다는 25% 감축안을 꺼냈다. 직전 총리 고든 브라운이 10년간의 재무부 장관 재임 시절 조직을 키우고 기능도 확대했던 기관이다. 잘사는 나라든 못 사는 나라든 재무부는 힘이 셀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가는 행보다.

재무부 개혁에 나선 오스본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자기 팔을 먼저 자르는 모범을 보여 다른 부처의 개혁을 군소리없이 유도해 내겠다는 것 같다. 가령 영국 법무부는 교도소의 복지예산 삭감이 현안이다. 교통부는 런던 일대 교통예산 줄이기가 과제다. 환경문화부도 3개 주(主)개혁 부처에 포함돼 있는데 진도가 시원찮다. 공공부문 전체의 개혁을 위해 힘있는 부처,재무부를 앞장 세운 것이다. 군살빼기가 일단 궤도에 오르면 남은 공무원들도 더 열악한 근무 여건을 불평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오스본의 기세라면 국내총생산(GDP)의 10%를 넘어서는 영국의 재정적자를 2015년까지 1%대로 줄이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무난히 달성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늙은 재정불량국'이란 이미지도,'제조업은 쇠퇴해가고 금융업에 기대 겨우 버틴다'는 악평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정권의 평판은 국가 신용등급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본국의 각오는 해외로도 즉각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재무부 인력감축안 발표 직후 필자와 만난 마틴 우덴 주한 영국대사는 "얼마든지 이코노미석도 탈 수 있다"고 했다. 일국의 대사가 2등석도 아닌 3등석에 몸을 싣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무실에 (살아)남아 있는 것 아닌가"라는 그의 말에는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

개혁으로 모드를 전환한 영국을 보며 한국의 공공부문을 생각하게 된다. 이달 들어 나온 정부의 발표자료에는 '300명의 육아 대체인력을 공무원을 위해 뽑는다'는 것도 있다. 출산 독려가 국가적 과제라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할지,의문이 든다. 부서에 한 사람이 몇 달 정도 비워도 아주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일을 잘 나눠 처리해갈 수 있다. "뭐니뭐니해도 공무원이 직업으론 최고"라는 세간의 평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군살빼기와 효율성 높이기로 국가 간 경쟁에 나서도 시원찮을 판에 외교통상부 장관이 자기 딸을 특별 채용해 분란만 일으킨 것도 우리 정부의 지금 모습이다.

정기국회가 개원했다. 국정감사장의 여야간 몸싸움을 몇 번 접하고 고함소리 몇 차례 듣다보면 어물쩍 300조원을 다루는 예산시즌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공공부문에서 조직 줄이기에 나섰다는 소식도,국회가 정부에 그런 압박을 가했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여당이 앞장서 공무원들 봉급부터 다시 올리기로 했고,국회는 한번이라도 의원 배지를 달면 매달 120만원의 연금을 평생받는 법안을 슬그머니 만들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공공개혁 시계는 몇 시인가.

허원순 국제부장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