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두바이에 출장갔을 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를 방문한 적이 있다. 초고층 건물에 적용된 첨단 기술과 사업관리 시스템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440m 높이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앞을 보니 푸른 바다를 넘어 이란도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고,바로 밑의 두바이 전경을 내려다 보자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기하학적으로 형상화한 사막의 꽃과 이슬람 전통문양이 절묘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 828m 높이의 건물이 우리 손에 의해 중동 사막 한가운데에 완공됐다는 사실에 가슴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때 현대 서양문명의 결정체라는 초고층 공간의 한 모퉁이에서 문득 동양사회의 대표적 가치인 '중용(中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동양의 중용은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으며 기울어지지도 않은 역동적이면서도 균형 잡힌 모습'이라고 풀이한다. 한참 지난 후 생각해 보니 아마도 역발상의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던 듯싶다.

60세를 일컬어 이 세상의 사리를 깨우쳤다고 하여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필자도 이 나이가 되고 보니,비로소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중용의 덕목이다. 삶을 담아내는 멋진 공간을 만드는 것이 어릴 적 꿈이었던 필자는 30여년간 건축 · 도시 관련 일을 해왔지만,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사회라는 우리 땅에서 살아남고 때때로 남보다 앞서기 위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주변을 살피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점점 철이 나면서 균형 잡힌 생활인 중용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내 삶의 영역 안에 있는 나와 가족,동료,친구,회사를 기준으로 균형을 깨트리는 요소는 무엇이 있는지 하나씩 꼽아보고 있다.

그리고 삶의 균형이 깨지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필자의 경험에서 비추어 보면 명예욕과 주위 사람과의 관계,목표의식 결여, 이 세 가지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한 경우라면,먼저 공을 이루었으면 더 큰 성공이라는 욕심에서 빠져나와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동료를 비롯한 주위 사람은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여유 있고 너그러운 자세로 은혜를 베풀었으면 좋겠다. 또한 목표의식이 결여됨을 느낄 땐 태어날 때 창조주가 부여한 사명을 되새기면서 주변에서 닮고 싶은 역할모델을 찾아 꾸준히 배워나가면 된다.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중용'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자신은 물론 가족,동료,친구,회사 그리고 내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찾고,그들을 귀하게 여기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필원 < 초고층복합빌딩사업단장 pwlee@rist.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