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채용 시비를 계기로 공무원 채용 방식이 우리사회의 핫이슈가 되고 있다. 때마침 행정고시 합격자의 50%까지를 서류 심사와 면접으로 뽑는다는 방침이 나와 있던 터였다.

지난 60여년 동안 필기로 치르는 고시는 역시 필기시험에 의존해온 대학입시와 함께 한국 사회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주요 기둥이었다. 돈도 '빽'도 없는 사람이라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필기시험을 잘 치면 '출세'가 보장되는 구도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고시는 한국 발전의 주요 축을 담당했다. 흔히 고시의 기원을 과거제도(科擧制度)라고 생각하기 쉽지만,실제로는 일본이 전수(傳授)한 것이다. 2차대전 전 일본은 국가 주도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고등문관시험'을 거쳐 선발된 관료가 모든 분야의 발전을 이끌었다. 이것이 광복 후 한국에도 이어져 1960~1970년대 국가 주도 개발시대에 고시 출신의 엘리트 공무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 주도 발전은 시간이 갈수록 한계를 드러냈다. 그에 따라 자유화 · 세계화라는 환경과 맞지 않는 '관치'의 바탕으로 돼 가는 고시의 모습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결과 1997년 외환위기 때 고시가 '패거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조건이 되었다는 이유로 개방직이 도입되기도 했다. 한국에 고시제도를 전수해 준 일본도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후 고시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이렇게 본다면 장기적으로 고시제도는 폐지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중 · 단기적으로 어떻게 하는가다. 자유화와 세계화에 적응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공정성을 보장하면서 고쳐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서류 심사와 면접에서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유 장관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그런 역량이 있는가가 문제다. 이것은 꼭 정실이나 부패가 작용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대학입시에서도 서류 전형과 면접을 도입한 결과 객관성이 떨어지고 공정성 시비를 일으킬 여지가 커졌다.

결국 고시제도 개혁은 점진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개혁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고시가 갖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그런 일 중 하나로 우선 공무원과 국책연구원 간의 인사 교류를 늘리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의 국책연구원은 역시 개발시대부터 존속해온 독특한 제도다. 그 구성원들은 전문성과 함께 준공무원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 사람 중에서 고위공무원을 채용한다고 이상한 일은 없을 것이다.

교수나 기타 민간 전문가가 정부 일에 참여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교수나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부 위원회 같은 곳을 보면 대개 구색 맞추기 위주다. 위원회에 '사무국'이라도 있으면 주객이 바뀌어 공무원이 주인 노릇 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따라서 교수나 민간 전문가가 정부 일에 참여할 때 '전임'으로서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최고위직 공무원 선발에 있어 가용 인재 '풀'을 늘린다는 이점도 있다. 고시제도의 가장 큰 폐해는 현실적으로 최고위직 공무원으로 쓸 수 있는 인재가 수십년간 폐쇄성과 배타성,관료적 경직성이 몸에 밴 고시 출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근본적 해결책은 고시제도를 개혁하는 것이지만,현 단계에서의 해결책이 없지는 않다.

그렇게 해서 고시제도가 개혁되기 전이라도 별도의 노력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다른 모든 개혁처럼 공무원제도 개혁도 '다면적'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