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전 고점 돌파의 기세를 몰아 코스피지수 1800선 등정을 시도했지만 주식형펀드 환매에 따른 자산운용사(투신) 매물로 다시 발목이 잡혔다. 지수 변곡점마다 되풀이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1800선 위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추산되는 펀드 환매 물량이 10조원에 달해 추가적으로 상승폭을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형펀드 사흘째 자금 이탈

한 달여 만에 1790선을 넘어선 코스피지수는 7일 개장 직후 1796.50까지 오르며 1800선 돌파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뒷심 부족으로 결국 4.68포인트(0.26%) 하락한 1787.74로 거래를 마감했다. 외국인이 2388억원의 매수 우위를 보이며 나흘 연속 순매수(9301억원)에 나섰지만 운용사 등 기관 매물이 쏟아져 지수를 끌어내렸다.

기관은 1507억원어치를 내다팔았다. 지난달 20일 2162억원을 순매도한 후 한동안 잠잠했던 운용사들이 사흘간 5476억원의 매물을 쏟아냈다. 투신은 삼성전자 신한지주 LG화학 삼성물산 등을 주로 내다팔았다.

지수가 1800선에 다가서자 펀드 환매가 재개되면서 운용사들의 주식 매도를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주식형펀드(상장지수펀드 제외)에서 지난 2일 1033억원이 순유출된 데 이어 3일에도 2154억원이 빠져나갔다. 지난달 31일 코스피지수가 1740선으로 내려앉자 이튿날인 이달 1일에는 1022억원이 순유입됐지만 이후 지수가 크게 반등하자 자금 이탈이 재개된 것이다.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한 6일에는 순유출 규모가 2597억원으로 지난달 4일(3382억원) 이후 한 달여 만의 최대였다. 양정원 삼성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펀드 내 주식 편입 비중이 95%에 달해 환매 요청이 들어오면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을 중심으로 매도해 환매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수 1800선 위에서 유입된 펀드 자금 규모가 20조원을 넘어 당분간 매물 부담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1400선을 넘어선 2006년 5월 이후 1800~1900선에서 유입된 자금만 9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동필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최근 외국인 매수세가 재개되기는 했지만 지난달에 비해 강도가 약해 늘어나는 환매 매물을 소화하기에 버거운 상태"라고 진단했다.
◆엇갈리는 경기 판단도 걸림돌

주요 국가들의 경기흐름이 일관된 방향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1800선 안착을 자신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혔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경기선행지수는 지난 3월 정점을 찍은 후 본격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중국의 경기선행지수는 이르면 10월쯤 바닥을 치고 반등할 전망"이라며 "기업 실적 등 국내 경기는 나쁘지 않지만 미국과 중국의 경기 사이클이 6개월가량의 시차를 두고 움직이는 탓에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수출 민감도가 높은 국내 경기 특성상 연중 최고치 행진에도 불구하고 고점을 높여가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의 리서치센터장은 "매번 발표되는 지표들이 시사하는 바가 달라 경기 판단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지금은 고용과 소비 같은 후행지표보다 재고순환과 투자지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 · 소비 증가는 경기 회복의 막바지 국면에 나타나는 현상인 만큼 당장은 부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과 중국의 설비투자 지표들을 보면 여전히 경기 회복은 진행 중"이라고 주장했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당장 1800선 돌파가 어려워 보이지만 종목별로는 양호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방향성에 연연하지 말고 종목 중심으로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강지연/서정환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