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회사들의 무분별한 카드 발급과 소비자들의 낭비성 과소비가 얽혀 터진 2002년 신용카드 부실 사태는 신용불량자들을 대거 양산했다. 근로자였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신용불량의 낙인이 찍혀 직장을 잃었다. 이들에게 다시 찾아온 일자리는 새로운 희망이다. 비록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면 빚을 다 갚고 새로운 삶을 싹틔울 수 있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김학중 캠코 취업지원팀장은 "2002년 카드 대란으로 양산된 20~30대 젊은 채무불이행자들이 신용 회복과 취업 지원의 도움을 받아 정상적인 경제 생활로 복귀하고 있다"며 "특히 신용회복자들은 자활 의지가 강한 만큼 편견을 거두고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드빚 재조정 뒤 상환

서울 군자동에 사는 이모씨(31)는 2002년을 생각하면 악몽 같던 나날이 떠올라 아직도 가슴 한쪽이 저려온다. 이씨는 당시 23세의 나이로 명품 화장품 브랜드인 L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직업상 명품을 가까이했던 이씨의 씀씀이는 자연스럽게 커졌다. 때마침 정부는 수요 진작과 투명한 세원 확보 등을 위해 카드 사용을 장려했다. 소득이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했다.

이씨에겐 정기적인 수입이 있었지만 그보다 지출이 훨씬 많았다. 카드는 곧바로 현금이 나가는 게 아니어서 충동구매를 하는 일도 잦았다. 매달 200만원을 버는데 쓰는 돈은 300만원이 훨씬 넘었다. 발급받은 카드 수는 7개에 달했다.

이 같은 소비는 오래가지 못했다. 빚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빚을 빚으로 막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은행과 카드 채무 2300여만원을 갚지 못해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됐다.

빚 독촉이 시작되면서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 이후 취업을 하려고 해도 신용불량자를 받아주려는 곳은 없었다.

이씨는 "그땐 너무 어려서 뭐가 뭔지 몰랐다"며 "과거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했던 잘못된 행동들을 가슴속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4년 7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한마음금융(www.badbank.or.kr)을 알게 돼 곧바로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자와 연체이자는 전액 감면됐고 원금도 30% 줄었다. 남은 원금에 대해서는 매달 23만9000원씩만 갚으면 된다.

문제는 취업이었다. 한때 신용불량자였던 이씨를 좋게 보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아르바이트 등 임시직으로 꼬박꼬박 돈을 갚아나가던 이씨는 뒤늦게 캠코 취업지원센터를 알게 돼 지난달 구직 신청을 했다. 다행히 곧 화장품 전문매장인 T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씨의 경력과 성실함을 높이 산 T사는 면접 직후 이씨의 채용을 결정했다. 이씨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할 것"이라며 "이젠 매일 가계부도 쓰고 영수증도 꼬박꼬박 챙기는 등 돈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캠코 돈을 다 갚으면 착실하게 적금도 붓고 저축을 해 서울에 조그마한 집이라도 한 채 사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이씨가 갚아야 할 돈은 이제 600만원 정도 남았다.

◆안정적인 직장이 중요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는 김모씨(36 · 여)도 2002년 카드 대란의 피해자였다. 그는 2002년 결혼 후 남편이 곧 실직하면서 본인 명의로 발급받은 카드로 생활비를 썼다. 소득이 없었던 김씨 부부는 불과 564만원을 갚지 못해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됐다. 결국 남편과 이혼한 김씨는 두 자녀까지 떠맡게 됐다.

김씨는 편의점,식당 아르바이트나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하지만 빚을 갚기는커녕 생활비 충당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지난해 캠코 신용회복기금을 통해 채무재조정 절차를 밟았다. 이자 전액과 원금의 30%를 감면받아 매월 9만원씩 8년간 상환하면 되도록 바뀌었다. 지난 7월에는 취업지원센터의 구직 알선으로 인근 어린이집의 보조교육사로 취직도 했다. 김씨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한다는 기쁨이 이런 것인 줄 몰랐다"며 "많지 않은 수입이지만 채무 상환도 하면서 애들 학원까지 보낼 수 있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신용회복기관 도움 얻어 취업

서울 구로구에 사는 이모씨(34 · 여)도 카드대란 직후인 2003년 직장을 잃고 채무불이행자가 된 케이스다. 2001년 대학을 졸업하고 L카드사에 입사했던 이씨는 2년 만에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회사를 나온 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씨는 2004년 어머니와 함께 분식점을 창업했다. 그러나 경기가 나빠 자금난에 시달렸다. 낮은 신용등급으로 은행 대출은 꿈도 못꾸던 이씨는 결국 한 캐피털사로부터 20%가 넘는 고금리 대출을 받았다. 이를 갚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 2004년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됐다. 그러다 지난해 6월 신용회복기금에서 채무재조정을 받았고 이후 3000만원에 육박하던 빚은 2000여만원으로 줄었다. 월 21만원씩 8년간 내면 전체 채무 상환이 끝난다.

캠코의 도움으로 취업도 해결했다. 채무재조정 후 곧바로 구직 등록을 했던 이씨는 한 의류업체에 취직할 수 있었고 지난달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이씨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빨리 취업을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