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군자가 지켜야 할 4덕(四德)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논하면서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라 했다.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과연 정의란 게 있는지, 도덕이란 게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특히 지도자급으로 꼽히는 사람들의 불법과 비리, 편법적 행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을 장식하고 있으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채 사건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달랑 1명을 선발하는 특채에서 현직 장관의 딸을 뽑은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그녀를 위해 일정을 조정하고,응시 자격 기준을 완화하고,면접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부여하는 등 노골적 특혜를 줬다니 말문이 막힌다.

설령 자격을 완벽히 갖춘 사람이라 해도 아버지가 수장으로 근무하는 곳에 특채로 들어가면 특혜와 불공정 시비가 빚어지게 마련이다. 말썽이 없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국무위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 그런 간단한 이치조차 헤아리지 못한 것은 참으로 의아하다. 주변에서 자주 보아 온 탓에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추측을 하는 외에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다. 그런 점에서 공무원 특채에 대해선 전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전면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유 장관 측근들 또한 심히 부끄러워해야 할일이다. 딸 특채에 따른 문제점을 솔직히 조언하기는커녕 온갖 편법을 동원해 뒤를 봐줬으니 공범이나 다를 게 없다. 아무리 대한민국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들 하지만 정말 이래서는 안될 일이다. 사회 부패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인사부패임을 잊어선 안 된다.

조각가 민홍규씨의 국새 사기 사건은 사람의 파렴치가,후안무치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극명히 보여준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 사람이 전통제작 기법을 보유한 것처럼 속여 국새제작단장을 맡고,전 국민을 농락한 것은 해외토픽에나 나올 법한 일이다.

민씨의 그 낯 두꺼움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지만,실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행정체계는 더 문제다. 현장점검만 제대로 했어도,주위 평판만 들어봤어도 생기지 않았을 일이다. 국새제작이란 중요한 사업을 하면서도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은 행정안전부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민씨가 주요 인사들에게 금도장을 돌리는 등 입막음을 시도한 것을 감안할 때 선정 과정에서의 로비 여부를 철저히 따져봐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의 도덕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는 총리 · 장관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행적을 보여주기는커녕 위장전입,탈세,논문표절,부동산투기 등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불법 · 편법 행위들을 버젓이 저질러왔다. 앞선 청문회들에서도 그런 모습은 마찬가지였다.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집행해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 탈법 행위를 일삼으며 사리사욕을 채워왔으니 어찌 국민들에게 법과 질서를 지킬 것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절차나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출세만 하면 그만,재물만 모으면 그만이라는 풍토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지도층을 차지하고 있으면 사회 정의가 바로 세워질 리 없고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맹자는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라 했다. 수오지심이야말로 의(義)의 근본이라는 이야기다. 공정사회 실현을 집권 후반기 화두로 들고 나온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이를 실천하려면 지도층과 공직 사회의 도덕불감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