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농업의 탄생일 것이다. 기원전 1만년부터 7000년 사이 세계 여러 곳에서 농경과 목축,정주가 시작됐다. 방랑 생활을 하던 인간은 이제 마을을 이루어 정착하게 됐고,진정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됐다.

농업의 탄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에 대해 처음 체계적인 이론을 제기한 사람은 오스트레일리아 학자 고든 차일드(Vere Gordon Childe)로서,그는 1920년대에 '신석기 혁명'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을 발전시켜 과거 세계사 교과서에는 이런 식의 설명이 제시됐다. 신석기시대에 농업과 목축이 '발명'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정주하게 되고 마을이 만들어진다. 대개 이때 이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물품인 도자기가 등장한다. 이러한 일련의 발명은 한 곳에서 시작돼 세계 각지로 전파됐는데,신석기혁명이 처음 일어난 곳은 근동 지역이다. 그런데 지난 50년 동안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 이 모델은 많이 흔들리게 됐다. 세계 여러 곳에서 독자적으로 농업이 시작됐으며 농경,목축,정주,도자기 등의 연관 관계나 등장 순서도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팔레스타인의 말라하(Mallaha) 유적을 보면 땅을 파고 단단하게 나무 골격을 댄 집들이 빙 둘러서 있어 정주 형태의 마을이 분명하지만 이곳에서 발굴된 먹거리 요소들은 모두 야생의 것이었다. 이 지역 환경이 너무 풍요로워 사람들은 따로 농사를 짓지 않고도 정주해 살 수 있었다. 그러니 꼭 농업의 발달이 있어야 정주 마을이 탄생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와 반대로 농업이 이미 시작됐으나 정주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도 있다. 멕시코 남부의 테우아칸(Tehuacan) 지역이 그런 예로 이곳에서는 농경이 시작되고 4000년이 지나서야 정주 마을이 생겼다.

도자기와 정주 농경의 관계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나이지리아의 아이르 산지(山地)에서는 기원전 8000년,심지어 일본은 조몬 시대인 기원전 1만3000년에 도자기가 등장했지만,모두 농업이 시작되지 않았던 때였다. 이와 반대로 근동 지역에서는 기원전 1만~7000년에 농경은 이루어졌으나 도자기는 없었다. 그러므로 농업이 먼저 시작되고 그것이 다른 여러 요소들을 낳았다고 할 수는 없다.

농업과 정주,도자기 등은 지역마다 상이한 순서로 일어났다. 근동 지역에서 보리,호밀,밀의 재배는 기원전 9500~9000년,목축은 기원전 8000년,마지막으로 도자기는 기원전 7000년에 등장했다. 농경-정주-목축-도자기라는 모든 요소를 갖추기까지 수천 년이 걸린 이 사건의 연쇄를 두고 '발명'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요즘은 농업의 시작을 어떻게 설명할까? 여러 학자들의 설이 있지만,그 가운데 특히 중요하면서도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고고학자 자크 코벵(Jacques Cauvin)의 설이다. 그는 농업의 시작을 물질적인 요소보다는 종교적인 요소로 설명한다. 코벵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무레이베트(Mureybet) 지역을 발굴 조사했는데,이곳에는 선사시대의 장구한 기간에 사람들이 계속 거주하여 농업이 시작된 시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핵심 기간인 기원전 1만~9500년 중 물질적으로는 큰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변화한 게 있다면 신앙과 관련된 것들이다. 그 수 세기 동안 집들이 커지고 실내 공간들이 구획됐는데 집안 중심 장소의 진흙 선반 위에 소대가리 뼈를 모시기 시작했고,곧 이어 돌이나 구운 흙으로 만든(테라코타) 여성상들이 등장한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낫의 날에 묻어 있는 물질의 흔적들을 현미경으로 정밀 분석하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주로 갈대를 베는 데 낫이 쓰이다가 다음 시기에는 밀과 보리를 베는 것에 쓰였다.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면 아직 덜 여문 야생종 이삭을 베었음을 알 수 있다. 재배종과 달리 야생종은 이삭이 익으면 낟알이 땅에 떨어지므로 그 전에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수백년 동안에는 흙 속에 밀과 보리의 꽃가루(pollen) 화석이 많이 보인다. 이는 마을 주변에 밭이 만들어졌고 재배가 시작됐음을 뜻한다. 이때 어떤 마을은 규모가 커지고 다른 곳에서는 마을이 사라진다. 이는 필경 수확과 같은 집단 노동의 필요 때문에 인구가 집중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처럼 농경이 자리잡아가는 장기간의 발전은 아마도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서서히 진행됐을 것이다.

농업의 시작은 어떤 물질적 변화 · 발전의 결과라기보다는 자연에 대한 인간 의식의 변화에서 비롯됐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소대가리와 여성상의 등장이라는 '상징 혁명'이었다. 코벵은 이것이 '위대한 여신',이와 연관된 황소 신으로 생각한다. 기원전 8000년대 아나톨리아의 유명한 차탈 휘익 유적에서 보이는 거대한 황소 신을 비롯해 후일 지중해 전역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예컨대 황소로 상징되는 제우스 신)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고고학적으로 이 이전에는 신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복종하게 됐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사냥의 삶에서 인고와 굴종의 농경시대로 이행하면서 인간과 세계 사이에 논밭이라는 '인공 자연' 공간이 형성됐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이 등장한 것이다. 농업의 탄생은 신의 탄생과 함께 이루어졌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