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선 다 하고 있는 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냐."(업계) "인수되는 회사의 위험을 키우는 명백한 범죄다. "(검찰)

차입매수(LBO) 방식 인수 · 합병(M&A)을 둘러싼 혼란에 대해 최근 법원이 의미있는 판결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점차 '위법'과 '적법'의 경계가 구체화되고 있다. 최근 판례에서 법원은 '피인수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면 불법'이라는 일관된 입장으로 LBO를 위축시켰지만,올 들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일합섬과 대선주조 건에 대해 연이어 적법 판정을 내려 M&A시장에 숨통을 틔웠다는 평가다.

◆합병 · 감자 · 배당 방식 LBO는 합법

대우증권 주관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산지역 소주회사 대선주조 인수전에 롯데그룹이 참여를 선언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대기업이 뛰어든다는 점 외에 LBO를 둘러싼 법원의 새로운 판단이 배경에 자리잡고 있는 점도 화제다.

부산지방법원은 대선주조 대주주였던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2007년 사모투자전문회사(PEF)인 코너스톤에퀴티파트너스에 회사를 매각하면서 대선주조의 감자(자본금 줄임)와 배당을 통해 마련한 돈으로 인수대금을 갚을 수 있도록 지원한 행위가 배임이라는 검찰 기소에 대해 지난달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코너스톤이 인수대금 2000억원을 금융권에서 대출받을 때 신 회장 측이 대선주조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기로 약정한 점이 위법적인 LBO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담보약정을 했을 뿐 실제 자금상환은 대선주조의 감자와 배당으로 해결됐기 때문에 회사에 위험을 초래하는 배임행위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2007년 한일합섬을 인수할 당시 LBO 방식을 동원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4월 무죄가 확정된 것과 함께 LBO에 숨통을 틔워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법원은 피인수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한 것이 아니라,인수 주체인 동양메이저와 합병한 뒤 합병법인의 현금성 자산으로 대출금을 갚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판시했다. 한일합섬이 보유한 단기금융상품 등으로 1800억원의 채무를 갚았지만 공정한 합병절차를 지켰기 때문에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무법인 광장 기업자문팀의 이형근 변호사는 "합병을 통한 동양메이저의 한일합섬 인수에 이어 감자와 배당으로 차입금을 갚는 방식도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와 LBO가 다시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BO 과정의 합리성 확보가 더 중요"

하지만 피인수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돈을 빌리는 방식은 '불법'이라는 게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2001년 건설사 신한을 인수하면서 이 회사의 부동산 등을 담보로 인수대금을 빌린 K씨에 대해 법원이 배임죄를 인정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법원은 당시 K씨가 한미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고 상환하는 과정에서 피인수회사인 신한의 부동산 예금 정리채권 등을 이용한 것을 배임으로 판단했다. 담보로 제공되는 자산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신한에 부담시키면서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하지 않은 점을 경영상 판단으로만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법원은 한신코퍼레이션 사이어스 전은리스 등의 LBO에서 나타난 자산담보 제공을 전부 유죄로 판결했다.

전문가들은 또 무죄 판정을 받은 합병이나 감자 방식 LBO도 무조건 적법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 회장 사례는 인수주체가 평판과 능력 면에서 우수한 대기업이라는 점이 무죄판결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합병 LBO가 전부 적법한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라는 설명이다.

감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변호사는 "재판부가 감자대금이 주식의 실질가치보다 높을 때는 배임 소지가 있다고 판시한 점을 볼 때 감자방식이 무조건 적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감자나 배당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종준 충북대 교수는 "불법으로 판정난 자산담보 방식이라도 진행과정이 투명하고 합리적이라면 적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


◆ LBO(차입매수)

Leveraged Buy-Out.인수하려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외부에서 차입한 자금으로 기업을 사들이는 M&A 기법.적은 자금으로도 M&A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신용위험이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