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 낙타!""캐멀(Camal)!""코레아,코레아!"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낙타 주인들의 호객 소리가 산중턱에 이르도록 끊이지를 않는다. 산길이 만만찮으니 낙타를 타고 올라가라는 유혹이다. 모래와 자갈에 발이 미끄러질수록,숨이 가쁠수록 유혹은 더 크게 다가온다. "낙타를 타기만 하면 훨씬 더 편히,더 빨리 정상에 도달할 수있는데…."

산에는 나무 한 그루,풀 한 포기 찾기 어렵다.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 땅 사이의 시나이반도 남쪽에 있는 시나이산.《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여호와(하나님)로부터 십계명을 비롯한 계명을 받은 곳으로 유명한 산이다. 카이로를 출발해 수에즈운하 밑을 관통하는 무하마드 함비 터널을 지나 시나이반도 북쪽에 들어서면 모래 사막이 시작된다. 그러나 시나이반도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붉은색 바위들이 삐죽삐죽 솟아나기 시작하다 마침내 해발 2286m의 시나이산을 펼쳐 놓았다.

이 시나이산을 올라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순례자들이 한밤중에 등산을 시작한다. 산 아래 숙소를 나선 것은 새벽 1시30분.2시에 보안검사를 받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길은 모래와 자갈 때문에 미끄럽고,손님을 기다리는 낙타들의 분뇨 냄새가 진동한다. 수시로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낙타 때문에 깜짝 놀라기도 여러 차례.숨이 턱턱 막히지만 낙타도 다닐 만큼 넓은 길도 있고 목을 축이거나 다리쉼을 할 수 있는 산장카페가 군데군데 있으니 그 옛날 모세가 이 산을 오를 때에 비하겠는가. 더구나 그땐 모세 혼자였고,길도 없는 황무지산을 오로지 믿음 하나로 오르지 않았던가.

모세의 삶은 실로 파란만장했다. 당시 이집트에 살던 유대인들의 수가 '하늘의 별같이' 날로 불어나자 파라오인 라메스 2세(기원전 1290~1223)의 박해가 날로 심해졌다. 마침내 유대인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도록 하자 모세의 어머니는 파라오의 딸인 공주가 오가는 나일강변 갈대숲에 아기 모세를 담은 상자를 놓아두었고,모세는 공주의 양자로써 장성했다.

40세에 공사장에서 유대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 감독을 쳐죽인 모세는 이집트와 가나안의 중간쯤인 미디안으로 피신,유대민족 해방의 목표를 위해 40년을 절치부심한다. 마침내 80세에 여호와로부터 "애굽(이집트)인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은 모세는 120만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파라오의 손에서 구출해 광야로 나섰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간단치 않았다. 파라오는 여호와가 10가지 재앙을 내리기까지 풀어주기를 거부했다. 마침내 파라오의 손에서 벗어나서도 파라오의 군대가 홍해까지 쫓아오자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고 원망했고,홍해를 건너 시나이반도의 사막에서는 물과 양식 때문에 모세를 탓했다.

그러나 모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백성들이 원망할 때마다 여호와의 약속을 믿었고 마침내 만난(萬難)을 헤치고 시나이산에서 십계명과 토라를 받았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네 부모를 공경하라.살인하지 말라.간음하지 말라.도둑질하지 말라.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

그런데 왜 여호와는 모세를 이 험하고 높은 산꼭대기로 불렀을까. 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고난을 안겨주며 해방이라는 목표에 다가서게 했을까. 민족해방이라는 목표가 원대한 만큼 그 과정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단련의 과정을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여호와는 유대민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계명을 상으로 내린 것이 아닐까.

함께 순례를 나선 박요셉 용인 새에덴교회 협동목사는 "모세가 홀로 감당해야 했던 고난의 시간이 결국 그가 받은 영광의 밑거름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같은 교회 이종민 목사는 "시나이산을 오르면서 모세의 영광보다는 그가 홀로 견뎌야 했던 고난과 외로움이 절실히 다가온다"고 말했다.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린지 한시간여.마침내 여명이 밝아오고 멀리서 붉은 해가 콩알만하게 떠오르기 시작하자 환호와 감탄이 한꺼번에 터진다. 한 번 솟기 시작한 해는 이내 시나이산 일대를,온 세상을 붉게 물들였다. 기다림의 보답이란 이런 것인가. 마치 모세가 긴 고난과 기다림 끝에 행복의 메시지를 받은 것처럼 다시 빛을 찾은 세상이 더 없이 밝아보였다.

시나이산(이집트)=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