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9일 시장의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연 2.25%)를 동결하자 채권 전문가들이 한은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한은이 금리 인상 시그널(신호)을 보내 놓고서 정작 금융통화위원회에선 다른 결정을 내린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김중수 한은 총재가 금통위원들에 대한 리더십을 상실했다는 평가까지 내놓고 있다.

외국계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은 이날 한은의 결정에 대해 '실기'했다고 평가했다. 이 증권사는 보고서에서 "한은이 거시경제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한은이 더 신뢰를 잃는다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석원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 제목을 아예 '혼자서 하는 의사소통'이라고 달았다. 그는 "지난 7월 금리인상으로 한은의 독립성이 커진 것으로 봤지만 (이번 결정으로) 그렇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한은의 신호보다는 금통위 이전에 나오는 청와대나 정부 입장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유재호 키움증권 연구원은 "앞으로는 금통위나 총재의 발언에 너무 집중할 필요가 없다"며 이번 결정의 모순점을 나열했다. 그는 한은 총재가 △지난달 금통위에서 △지난달 17일 웨스틴조선호텔 강연에서 △26일 뉴욕 강연과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는데 이를 뒤엎고 동결한 것을 가장 큰 모순으로 꼽았다. 또 마지막으로 인상을 시사한 시점부터 2주 만에 결정이 바뀐 것 등도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박혁수 현대증권 연구원은 "통화당국의 '시그널링 효과'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상황에서 시장은 '5분 대기조'자세로 통화정책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김 총재가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도 뒤집힌 것은 금통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며 "금통위에서 의장인 한은 총재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재는 이런 비판에 대해 "시장과의 소통은 단기적 소통과 중장기적 소통이 있다"며 "중장기적으론 금리 정상화라는 기조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채권시장에선 한은의 신뢰성이 상당히 떨어진 만큼 김 총재의 정책기조유지 발언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금리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