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 기행] 세비야에는 돈 후안의 열정·피가로의 익살이 흐른다
"저희 주인님이 '작업'한 미인들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이탈리아에서 640명,독일 230명,프랑스 100명,터키에서 91명이고 스페인에서는 무려 1003명입니다. 이 중에는 시골처녀,하녀,창부,백작부인,공작부인 등 지위 계급 스타일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부류의 여인들이 있지요. "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돈 조반니의 하인인 레포렐로가 자기 주인이 한 여인을 유혹하려다 그 여인이 예전에 자신이 유혹했던 엘비라라는 여인임을 알아보고는 줄행랑을 놓은 사이 엘비라를 위로하기 위해 뒤에 남아 부른 아리아 '카탈로그의 노래' 부분이다.

[해외문화 기행] 세비야에는 돈 후안의 열정·피가로의 익살이 흐른다
돈 조반니(스페인 식으로 '돈 후안')는 카사노바와 함께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을 울린 희대의 바람둥이로 '억제할 수 없는 열정'의 대명사다. 그는 미겔 데 마냐라라는 세비야의 실존 귀족을 모델로 한 캐릭터로 끝없는 여성 편력을 펼치다 자신이 살해한 인물에 의해 지옥에 떨어지고 만다는 가공의 인물이다.

"나는 이발사일 뿐만 아니라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모두들 '피~가로,피가로,피가로'하며 찾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자 해결사라네."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이발사 피가로가 부르는 '나는 이 마을의 팔방미인'이라는 곡의 한 소절로 바리톤 김동규가 즐겨 부르는 카바티나(단순한 선율의 독창곡)다. '세비야의 이발사'는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의 작품으로 알마비바 백작이 로지나라는 처녀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피가로는 이 결혼을 방해하는 로지나의 후견인 바르톨로와 그녀의 음악교사인 바질리오의 사이에서 두 사람을 맺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 피가로도 세비야 출신인데 꾀 많은 거짓말쟁이로 때로는 시니컬하지만 성격이 원만하고 남에게 호의를 베풀려는 인물이다. 그는 평소엔 냉철하지만 일단 화가 나면 이성을 잃고마는 라틴계 사람들의 전형적 성격을 소유한 캐릭터다.

말이 나온 김에 세비야 출신의 캐릭터를 한 명 더 들자.바로 카르멘이다. 원래 메리메의 동명 소설 속 헤로인으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비제의 오페라 속 주인공으로 더 유명하다. 돈 호세라는 기병 하사관이 세비야의 연초공장에서 만난 집시 여인 카르멘에게 매혹되면서 파멸의 길로 빠져든다는 이야기.카르멘은 이 남자에서 저 남자로 끝없는 애정행각을 벌이다 결국 돈 호세의 칼에 목숨을 잃고 만다. 끊임없는 남성편력과 주인공의 죽음은 돈 조반니의 여성 버전이라 할 만하다.

세비야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그 속에 나타난 세비야인 캐릭터를 관류하는 공통된 특징은 정열적이고 감성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세비야가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경제적 문화적 중심이 되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보편적 기질을 의미하게 된다.

과달키비르강 하류에 위치한 세비야는 로마시대부터 히스팔리스라 불리며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5,6세기에는 반달족과 비시고트에게 정복되었다가 712년 무어족(보통 북아프리카의 회교도를 말함)의 수중에 들어간 이후 500여년간 무어왕국 수도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래서 세비야의 건물들에는 아라비아 건축의 냄새가 짙게 풍기며 1248년 카스티야왕국의 페르난도 3세에 의해 기독교 세력권에 들어간 후에도 아라비아풍의 '무데하르 양식'이 계속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비야가 본격적인 융성기를 맞이하는 것은 카스티야 왕의 지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식민지 생산물들이 이곳에 집중되면서다. 세비야는 카스티야왕국 유일의 독점무역항 지위를 보장받아 모든 무역선은 세비야를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었고 유럽 상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들여온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세비야로 와야만 했다. 그러나 세비야의 번영은 16세기 초에 카디스항을 개항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고 1649년에 몰아닥친 흑사병으로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세비야의 옛 영화는 도시의 중심에 우뚝 선 대성당 카테드랄과 히랄다의 탑이 증언해주고 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고딕 양식의 대성당은 1402년 같은 자리에 있던 회교사원을 철거하고 1세기에 걸쳐 건립한 것이다. 성당에 부속된 98m 높이의 종탑은 원래 있던 70m의 모스크 첨탑 위에 종루를 얹은 것이다. 그래서 아라비아풍과 고딕 양식이 뒤섞여 이국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카테드랄과 바로 맞붙은 알카사르는 14세기에 페드로 1세가 건립한 왕궁으로 스페인과 이슬람 양식이 결합된 '무데하르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건물 외벽의 세밀한 기하학 문양과 실내의 채색 타일은 아라비아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알카사르 남쪽의 정원을 끼고 산 페르난도 거리를 따라가면 세비야대학이 나오는데 이곳은 원래 담배공장으로 소설 속의 카르멘이 돈 호세와 처음 만난 곳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 내려가면 마리아 루이사 공원에 도달한다. 19세기에 지어진 산 텔모 궁전에 딸린 정원인 이곳에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에스파니아 광장이다. 1929년 이베로-아메리카 박람회 기념으로 건립된 광택나는 붉은 벽돌 건축은 아라비아풍의 무데하르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해외문화 기행] 세비야에는 돈 후안의 열정·피가로의 익살이 흐른다
오늘날 세비야가 스페인 최고의 방문지로 손꼽히게 된 데는 이런 유서 깊은 건축물 외에도 '페리아 데 프리마베라'라는 봄축제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축제는 4월 하순에 과달키비르 강변의 축제광장에서 열린다. 이때 세비야 사람들은 전통의상 혹은 플라멩코 의상으로 치장하고 1주일 동안 술잔을 부딪치고 밤새도록 춤을 춘다. 이방인들도 그 속에서 저마다 정열의 포로가 돼 돈 후안이 되고 카르멘이 된다. 혹시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언제고 낙천적인 '해결사' 피가로가 나타나 당신을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