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8월 말 유례없이 1년에 두 번이나 중국을 다녀온 이후로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 그동안 천안함으로 인한 대북 강경 기조가 적어도 G20 서울회의 이후, 빨라도 연말까지 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북한이 천안함에 대해 사과할 리가 만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지난 김 위원장 방중시 중국은 한반도 안정을 위해 북한이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지 말고 남쪽과 대화할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또한 중국이 6자회담 재개에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 상황을 반전시켜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6자회담 재개와 대북제재 사이를 저울질하듯이 6자회담은 중국이,남북관계는 북한이 상황 타개를 위해 접근하면서 한반도 기류는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 방중에 맞춰 우다웨이 6자회담 중국 대표가 방한했고,이어 위성락 한국 대표가 6자회담과 관련해 미국을 방문했다. 12일에는 보즈워스 미국 대표가 한국을 방문했다. 유엔총회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아직까지 한국과 미국에게 6자회담 재개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미국은 북한이 천안함 사태를 은근슬쩍 넘어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한국의 입장을 나름대로 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즈워스 대표가 방한한 이후에도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는 지금까지의 입장이 지속될지,남북한 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마무리를 짓고 6자회담의 틀로 나아가게 될지 앞으로가 주목된다.

그런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도 현재 중대 기로에 있다. 북한이 대승호 선원을 전격 송환한 이후 수해물자를 쌀 · 중장비 등으로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추석을 맞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자고 제의해 왔다. 대북 쌀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온 이명박 정부로서는 1주일이 넘도록 쌀지원 방침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순수 인도주의 사안으로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 지난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북한 조문단의 방한에 이어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연결되는 이른바 '유화 모드'가 다시 한반도 상공에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올해는 작년과 상황이 다르다. 천안함 사태로 남한 차원의 대북제재가 진행되고 있다. 말뿐인 6자회담의 피로감도 높다. 김 위원장의 건강도 더 안좋은 상황이고 당대표자회 등 북한 내부도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체제의 불안정성도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이번 수해지원이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천안함 제재 기조를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을 좀 아는 사람들에겐 북한의 노림수가 훤히 보인다. 전형적인 평화공세,유화전략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에 대응해서 대처하면 된다. 그러려면 일단 대화의 테이블에는 마주앉아 있어야 한다. 오히려 부담이 적은 인도주의적 차원의 문제들부터 시작해 점차 당국간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이제는 대화를 통해 남북 간 현안을 풀어나가야 한다. 천안함 문제,금강산 관광문제 등도 대화를 통해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좋다.

여당까지도 합세해 대북 쌀지원을 주문하고 있다. 쌀이 남는다고 그냥 주는 것은 아니다. 쌀을 매개로 해 북한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받아낼 것은 받아내야 한다. 원칙을 지키되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기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대통령의 임기도 반이 넘었다. 여당에서도 남북관계의 오랜 경색이 부담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대화를 열고 다시금 신뢰를 쌓아가는 가운데 남북관계의 진정한 발전이 올 수 있다.

양무진 < 경남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