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연 사상 최고 히트작인 '난타'의 제작자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53)가 대학 교수 겸 학장이 됐다. 성신여대가 신설한 융합문화예술대학의 초대 학장에 임명된 것이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대학 측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여대 학장이 됐으니 30년 넘게 피운 담배를 끊어야겠다"며 대화 도중 연신 금연초(전자담배)를 꺼내 문 그를 서울 삼성동 아티움공연장 안에 있는 PMC프로덕션 사무실에서 만났다.

▼융합문화예술대학이란 이름이 생소한데….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다방면에 능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해졌습니다. 학생들이 과목을 교차 수강해 전공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융합문화예술대학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가령 연기학과 학생이 무용학과 강의를 듣고,경영학과 학생이 음악학과 수업에 참여하는 식이죠.문화가 산업화하는 초기 단계인 만큼 순수예술보다는 문화산업 관점의 커리큘럼이 절실합니다. "

▼예술가보다는 문화산업 전문가들을 키우는 데 더 의미를 두겠다는 말씀 같습니다.

"예전에는 아티스트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프로듀서(제작자)와 문화기획자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소녀시대 등 한류스타들을 배출한 SM엔터테인먼트의 배후에는 이수만 회장 같은 프로듀서가 있지 않습니까. 이 회장처럼 일급 프로듀서가 되려면 문화와 사회의 다방면을 알아야 합니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 등 미디어들의 속성도 꿰뚫어야 합니다. 콘텐츠가 장르 · 매체 간 영역을 넘나들며 융합된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죠."

▼어떤 학과들을 개설할 계획입니까.

"학과 이름도 여러 분야를 섞었습니다. 문화예술경영학과(모집정원 40명),미디어영상연기학과(20명),현대실용음악학과(20명),무용예술학과(20명),메이크업디자인학과(20명) 등 5개 학과를 내년 1학기부터 운영할 계획입니다. 오는 11월 서울 미아동 옛 신일고 야구장 부지에 건물을 완공하고 학생들을 선발할 겁니다. 매일 오전 성신여대에 출근해 신축 중인 건물에 과별 공간을 배치하고,대학 전체 커리큘럼을 만드는 작업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교수진을 구성하는 데도 관여하고요. 저는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로 공연예술 기획과 마케팅에 대해 가르치게 됩니다. 물론 경영학이나 마케팅학 원론 강의는 전공자들이 맡게 될 겁니다. "

▼다른 대학의 문화산업학과와 차별화 전략은.

"저는 학교가 아니라 현장 출신입니다. 현장과 밀접한 학풍을 조성하겠습니다. 우선 PMC프로덕션 등 문화기업 50여곳과 업무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계획입니다. 학생들이 방학 때 이들 문화기업에서 인턴십을 하고,우리 대학은 문화기업 직원들의 재교육을 맡아주는 식이죠.외국 대학들처럼 문화센터 역할도 하겠습니다. 700석 · 400석 · 200석짜리 공연장을 3개 짓고 있습니다. 거기에 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학생들이 연극과 뮤지컬 등을 공연할 겁니다. "

▼배우에서 제작자,교수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아역배우로 시작했으니까 배우는 타고난 거죠. 그런데 배우를 하다보니 연출자의 지시대로 움직이는,수동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더군요. 작품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프로듀서를 택했습니다. 프로듀서는 제 의지를 갖고 시작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교수직은 의무감 때문에 수락했습니다. '난타'로 받은 대중의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50줄에 들어 선배 소리를 들으니 후배들을 키우는 게 순리라고 여겨지기도 했고요. 제가 30~40대라면 절대 수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

▼교수직은 창작자들의 무덤이라고들 합니다만….

"전 절대로 안 그럴 겁니다. 오히려 창작을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창작자들이 교수가 된 뒤 안정된 수입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저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해 교수가 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트렌드를 배울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겁니다. 새로운 매체에 대해 저보다 잘 아는 학생들에게 자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출연하는 실험극도 올릴 계획입니다. 말하자면 제게는 창작 실험실이 더 생긴 셈이죠.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시간을 쪼개 PMC 일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

▼문화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처음에는 콘텐츠가 제일 중요합니다. 일단 킬러 콘텐츠를 생산한 뒤에는 조직과 회계 등을 관리하는 게 중요해요. PMC 경영이 안정된 것은 '난타'라는 킬러 콘텐츠가 있는 데다 조직과 회계를 관리하는 이광호 공동대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수를 겸직할 수 있는 것은 이 대표가 회사 살림을 해주는 덕분이죠."

▼'난타'나 강의나 콘텐츠란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성공한 콘텐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콘텐츠의 본질은 스토리 텔링이죠.연극,영화,강의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강의 내용에 스토리가 담겨 있으면 학생들이 재미를 느낄 겁니다. 흥미로운 스토리는 관객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반전을 갖고 있습니다.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획기적인 아이템이 있을 때 스토리 텔링은 성공합니다. '난타'는 우선 소재 자체로 관객의 뒤통수를 쳤습니다. 부엌이란 공간에서 요리사가 음식을 만드는 공연은 처음이었어요. 주방도구를 두들겨 새로운 리듬을 만든 것도 관객의 상상력을 뛰어넘었고요. 저는 90분간의 축구 경기처럼 관객과 끊임없이 교감하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는데,그게 '난타'였죠.초연할 당시 극장 입구에서부터 관객을 놀라게 했어요. 휴대폰을 끄지 않아도 되고 어린이를 동반해도 되며,음식물을 갖고 들어와도 된다고 써 붙였거든요. 공연 상식을 깨니까 관객들이 즐거워하더군요. "

▼'난타'가 13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호황이죠?

"입장객 수가 사상 최고예요. 중국인 관객이 무척 늘었거든요. 조만간 일본인 관객을 추월할 겁니다. 서울 정동과 압구정동 명동 제주시 등 전용관 4곳의 객석점유율이 거의 100%입니다. 해외와 지방 순회공연팀도 수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난타' 공연팀이 9개인데,2개팀이 트레이닝 중이니 곧 11개팀으로 늘 겁니다. 올해 '난타'의 예상 매출은 200억원이고 다른 공연까지 포함한 PMC 전체 매출은 300억원입니다. 영업이익은 40억~50억원, 영업이익률은 15% 안팎으로 보고 있습니다. "

▼다른 공연들은 어떤 게 있죠?

"'난타'를 아동용 뮤지컬로 만든 '어린이 난타',어린이들이 주방기구로 소리를 내보는 '어린이 난타 체험전',온가족이 밀가루로 놀이하는 체험전 '가루야 가루야',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뮤직 인 마이하트' 등이 4~5년 전부터 거의 매일 열리고 있습니다. 4곳의 '난타'와 함께 총 8곳에서 매일 공연이 열립니다. 매일 오후 10시께 휴대폰으로 공연 보고가 문자로 들어옵니다. 그걸 보고 오늘도 무사히 넘어갔다고 안도하죠."

▼실패작은 없었습니까.

"2000년대 초 'UFO'란 작품이 가장 아쉽습니다. 너무 앞서갔어요. '비보이'란 말이 생기기 전에 만들었는데,이 공연의 안무는 힙합이었습니다. 뮤지컬 '대장금'의 초연도 실패했어요. 공연 장르의 특색을 살리지 못한 채 드라마 축소판 같았거든요. 그래서 음악과 시나리오를 새로 써 경희궁에서 공연했더니 그때서야 성공하더군요. "

▼공연 사업의 성공 비결은 뭡니까.

"공연 사업은 흥행 비즈니스입니다. 수요자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리스크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예산을 적게 투입하는 소극장 공연을 만드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죠.가능성이 보이는 작품은 마케팅을 강화해 롱런시켜야 합니다. '난타'가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한두 차례 성공으로 끝났을 거예요. 작가주의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작품이 아니라,관객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신 상업주의에 물든 작품이라 해도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필수입니다. "

▼앞으로 공연 계획은.

"오는 25일부터 10월2일까지 안동에서 하회탈을 모티브로 한 퍼포먼스를 공연합니다. 10월15일부터 24일까지는 서울 코엑스아티움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11월에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로 싱가포르에서 이틀간 공연합니다. 한국 뮤지컬이 싱가포르에서 공연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싱가포르 같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건 공연 기획자들에게 당면한 임무죠."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 송승환 대표는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는 보성중,휘문고를 거쳐 한국외국어대에 입학했지만 연극을 향한 열정으로 중퇴하고 극단 76에 입단했다. 일찍이 아역 배우로 연예계에 입문해 연극과 방송,영화를 오가며 MC와 배우로 활동했다. 하이틴 스타로 인기 절정이던 1985년 뉴욕으로 떠나 3년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실컷 맛봤다. 이때의 경험이 뮤지컬 제작자가 되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1996년 휘문고 동창생인 이광호 공동대표와 PMC프로덕션을 설립,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공연기획사로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