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항생제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으로 각국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주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1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일본 열도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감염의 직접 책임이 있는 한 대형 병원이 대(對)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면서 파장이 커지는 분위기다. 영국 미국 등에서도 슈퍼박테리아 감염환자 수가 불어나고 있다. 사이언스 · 란세 등 저명 학회지들은 올 들어 다양한 슈퍼박테리아의 인체 감염사례와 그 확산을 엄중 경고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아직까지 한국에선 슈퍼박테리아 감염환자가 보고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을 슈퍼박테리아 '제로지대'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방역이 철저한 영국과 일본에서 환자가 발생한 데다,국내 병원들이 항균제 오 · 남용에서 자유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슈퍼박테리아의 존재는 미국 일본 등지의 첨단 병원들이 원인이 불명확한 사망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일종의 '양심선언' 과정에서 나온 것이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게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질병통계관리국(CDC)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매년 9만명 이상이 황색포도상구균(MRSA)이라 불리는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되고,이 중 1만8500명가량이 사망하고 있다.

국내 보건당국도 지난 1일 MRSA 등 5종의 슈퍼박테리아를 12월부터 법정 전염병으로 신규 지정하기로 했다. 연내 집중 감시체제를 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대책이 반 박자씩 늦은 게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동물사료에 무차별적으로 항생제를 섞어 사용해 온 국내 실정에 비춰볼 때 슈퍼박테리아의 감염경로가 사람에게서 가축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신종 질병에 대한 미온적이고 뒤늦은 대처가 얼마나 많은 사회 · 경제적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지난해 신종플루의 팬데믹(대유행) 사태를 통해 똑똑히 배웠다. 일차적으로 주요 감염처인 병원의 안전관리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다국적 제약회사 위주로 진행 중인 슈퍼박테리아 연구 및 치료제 개발경쟁에도 국내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

손성태 과학벤처중기부 기자 mrhand@hankyung.com